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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망상 끊은 직후 한발 더 내딛어라

기자명 채한기

설 정 스님 조계사 禪 법문

“無記에 떨어지지 말라”

수덕사 설정 스님은 5월 9일 열린 ‘조계종 선원장 초청 대법회’에서 ‘단박 깨침(돈오)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법문했다. 설정 스님은 “무기에 떨어지면 기분좋은 편안함은 얻지만 깨침과는 거리가 멀다”며 “망념이 끊어졌을 때 안주하지 말고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내딛는 용기로 정진하라”고 당부했다. 또한 설정 스님은 “이분법적 사고가 혼탁한 사회를 만든다”며 “양변을 떠난 불교의 중도 사상을 사회에서 실천해 가야할 때”라고 지적했다. 설정 스님의 법석을 끝으로 ‘조계종 선원장 초청 대법회’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회향했다.

사진=남수연 기자




일체 삼라만상은 문수의 눈이고
물소리는 그대로 관세음보살의 음성이라.

마음을 비우고 들으면 제 법문이 아니더라도 일체 삼라만상을 통해 법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법을 간절히 원하는데도 법을 설하지 않으면 법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했고 ‘법문 듣는 사람의 자세가 제대로 안되었는데 법문을 하는 것도 법을 잃어버린 것’이라 했습니다. 대중은 지금 어느 위치에서 듣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한용운 선사는 선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을 선이라고 하면 이미 선이 아니다. 선이 아니면서 선이고 선이면서 선이 아닌 것이 선이다.” 한국불교는 통불교를 지향하면서도 수행방법은 사교입선을 택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교리란 바로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선을 통해서 몰록 생사를 끊어버려야 되는데 오늘 주제가 돈오인만큼 돈오란 어떤 것이냐에 대한 이해를 잘 하셔야 합니다.

단박에 깨쳐버리는 것이 돈오입니다. 점차적으로 시간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 한 찰나에 무명을 다 끊어 버려서 자기 본성을 깨치는 것이 돈오입니다. 무념(無念)을 종취로 삼고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음을 참 뜻으로 삼으며 청정(淸淨)을 본체로 삼고 지혜(智慧)로써 작용을 삼습니다.

찰나에 몰록 깨는 게 돈오

깨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꿈속에서 깨는 것입니다. 백년도 못사는 인생을 살면서 좋은 꿈 나쁜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거품 같은 것이고, 아침이슬과 같은 것입니다. 인생이 길다지만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의 짧은 시간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꿈속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잠을 자다가 누군가에게 몸둥이로 한 방 맞으려 할 때 확 깨지 않습니까? 이처럼 어느 한 순간 몰록 깨는 것이 돈오입니다.

생멸법에서 살고 있는 한 우리는 고통에서 면할 길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지옥에 갈 때 불성도 따라갑니까?” “안 따라 가느니라” “어찌 안 따라갑니까?” “마음자리는 생멸법이 아니기 때문에 지옥이나 극락에 가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 뒤에는 다시 ‘지옥에 들어가느니라’합니다. 들어가면 들어가고 안들어가면 안들어가지 또 들어갔다 안들어간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지옥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중생업입니다. 업도 생멸법이기에 업연으로 인해 우리는 고통 받는 것입니다.

꿈을 깨라고 하는 것은 상주법계의 그 마음 자리를 보라는 것입니다. 선가에서도 보면 이 본분자리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이론을 붙일 수 없고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생각으로 미칠 수 없고 알래야 알 수 없는 언어도단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아니러니하게 선가에는 말이 많습니다.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나 선사의 법문은 근본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입니다. 달은 보지 않고 대부분 사람들은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에 머물러 있습니다. 조사들이 가르친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말끝에 매달리면 돈오 못해

대매 법상 스님이 스승인 마조 스님에게 묻습니다. “불(佛)이란 무엇입니까?” “즉심즉불(卽心卽佛)이다.” 어느 스님이 물었습니다. “마음이 부처다 하셨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어린애들 우는 것 그쳐주려고 한다.” 짓궂게 또 묻습니다. “어린애 울음 그치면 뭐라고 말씀하시렵니까?” “비심비불(非心非佛)이다.” “어린애 울음도 그쳤고 그 상태도 아니면 그런 애들에게는 뭐라 말씀하시겠습니까?” “대도나 부지런히 닦아라 하겠다.”
말끝에 매달려서 정신 못 차리면 돈오 할 길이 없습니다.

이 속에 들어와서는 모든 알음알이를 다 놓아야 합니다. 무념심이라는 것은 목석이 아니라 보리심, 즉 정념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정념은 무엇이고 사념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유무를 생각하고, 선악을 생각하면 삿된 생각입니다. 선악을 떠나고 유무를 떠나 것이 정념입니다. 고락이라든가 취사 원친을 떠난 것을 정념이라 합니다.

선의 목표가 생사해탈이지만 저는 그보다 중도 사상을 진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철대오하지는 못하더라도 중도로 살아갈 때 가정과 국가, 인류평화가 출발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선은 어떻게 지어나가야 할까요. 마음부터 변해야 합니다. 중생과 보살,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중생은 업에 끌려서 살고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부처는 환경이나 상황에 절대 끌리지 않습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팔풍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익과 손해, 비방 등에 우리는 정신없이 흔들립니다. 육감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며 팔풍에 흔들리니 세상은 탁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선가에서는 ‘활구에 천득하면 불조와 더불어 스승이 되지만 사구에 천득하면 자구불능이라’했습니다. 사구에 떨어져 공부하면 자기 하나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말로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사구라고 합니다. 선에서 보면 팔만대장경도 사구입니다. 활구는 언어가 끊어진 자리요,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공부는 은산철벽이 앞을 막듯이 딱 막힌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참 면목을 가르쳐 준 것이 화두입니다. 누구든지 열심히 하면 자성청정심을 보고 몰록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이 공부입니다.

나옹 스님은 ‘일찰나에 900생을 산다’고 했습니다. 생멸이 일어나고 꺼질 때 그 순간을 잡아서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순일해 지고 망상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망념이 가라앉으면 기분이 묘해지며 마냥 좋습니다. 몇 시간 며칠도 잠깐 가는데 이것은 함정입니다. 함정인 줄 모르면 바로 무기에 떨어지고야 맙니다. 무기에 떨어지면 기분은 좋고 편안한 가운데 시간은 잘 가지만 깨침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팔풍에 흔들리지 말아야

모든 번뇌망상이 끊어질 때 화두가 잡혀가기 시작합니다. 화두를 들 때는 앞뒤가 다 끊어져야 합니다. 백척간두진일보, 죽기를 무릅쓰고 한 발 더 내 딛는다 했습니다. 번뇌망상 끊어진 아라한과나 멸진정에 간 사람을 보고 견성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1200대중 수 많은 대중에게 꽃을 들었지만 그 누구도 그 도리를 알지 못하고 가섭만이 파안미소로 답했습니다. 아라한들이 그토록 많았지만 정법안장은 가섭에게 전했습니다. 바로 가섭만이 구경각을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멸진정 갔다고 해서 대각을 성취한 것이 아닙니다. 불교의 견성, 돈오라하는 것은 구경각을 이룬 것이며 열반입니다.

한발짝 천길만길 낭떨어지에서 죽기살기로 손을 놔 버리는 그런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멸진정에서 한발짝 더 내딛어 죽었다 살아나면 만고의 광명이 하늘을 비추고 땅을 비츨 것입니다. 자신의 본 집에 돌아가는 소식입니다.

정리=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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