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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카트만두 스와얌부 나트

기자명 법보신문
‘역마살’이 옴팡지게 걸린 직업이라는 기자 생활 16년 만에 어렵게 찾아온 붓다 성지 순례의 기회는 길을 떠나기 전부터 기자의 마음을 무척 설레게 한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인도 땅의 붓다의 성지를 순례하게 된다니, 그것도 붓다의 일대기를 따라서 돌게 되는 각별한 일정이라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순례기를 쓰기 전에 많은 망설임이 있었으나 생각 끝에 이번의 순례가 붓다의 탄생지부터 열반지까지를 붓다의 일생에 따라 차례로 찾아다니며 붓다를 생생하게 체험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므로 이전의 순례기와는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용기를 냈다. 붓다의 일대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때론 순례자의, 때론 수행자의, 또 때로는 붓다의 마음이 되어 생생한 감동을 표현해볼 생각이다. 붓다를 찾아가는 이 성스러운 여정에 많은 분들이 함께 동행해주셨으면 좋겠다.

붓다 전설 깃든 스와얌부

순례자들의 영원한 고향


<사진설명>세계문화유산 스와얌부 나트의 중심 수투파. 자궁을 상징하는 하얀 돔(Dome)과 그 위에 선 번쩍거리는 황금 첨탑은 카트만두 어디서나 잘 보일 만큼 크고 웅장하다.

붓다의 성지를 찾아가는 도중에 태국을 경유했다. 붓다의 탄생지가 있는 네팔 룸비니까지 한번에 연결되는 하늘 길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국도 불교도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붓다의 나라이니 잠깐이라도 들르는 것은 되레 반가운 일이다. 방콕에서 1박을 하는 동안 에메럴드 사원, 새벽 사원, 마하붓다람 사원 등 시내의 주요 불교성지를 돌아보았다. 이미 다녀온 곳이기는 하지만 태국 사원의 그 현란한 장엄은 여전했다.

다음날 아침 방콕 발 카트만두(Katman du)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3시간 남짓 지나면 붓다께서 탄생하신 나라, 네팔에 첫발을 내딛게 될 것이다.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가 인도가 아닌 네팔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네팔의 지정학적 현실이 인도의 속국처럼 되어 있어 그리 생각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룸비니가 네팔의 영토로 귀속되는 과정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룸비니는 과거 인도의 땅이었는데, 네팔과의 국경선을 정비할 당시 인도의 대표가 들쭉날쭉 복잡한 국경선을 단순화시키는 과정에서 그만 룸비니가 네팔의 땅으로 넘어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후 룸비니에서 아소카 대왕의 석주가 발견되었고 붓다의 탄생지임이 확인되었으니 인도의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땅을 치며 후회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붓다가 탄생한 나라, 그리고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은 가난하다.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이 250달러 안팎으로 극빈국에 속한다. 사회간접자본(SOC)은 초보적 단계에도 미치지 못하니 네팔에서의 성지순례에는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네팔은 신들의 나라로 불릴 만큼 풍부한 영혼을 간직한 곳이다. 8000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무려 14개라니 자연 숱한 신들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국왕을 신처럼 여긴다. 네팔리(네팔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낙천적이다. 국경은 북쪽으로 중국 씨짱(西藏)자치구, 즉 티베트와 접하고, 동남서쪽은 인도에 둘러싸여 있다.

방콕 돈무앙 공항의 카트만두 행 승객 대기소는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일본인, 미주나 유럽에서 온 사람들, 황색 가사를 걸친 남방의 스님들, 그리고 에베레스트 등정을 하러 간다는 등산객 차림의 산악인 등 백·황·흑의 피부가 골고루 뒤섞여 있다. 연령대도 젊은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네팔 수도… 인구 70만

이들이 모두 붓다의 성지를 찾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동양의 가치를 알고 있거나 동양과 여러 생에 걸쳐 인연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도반처럼 여겨진다. 그들도 같은 마음인지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밝게 미소 짓는다. 이런 정황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전 세계가 동양의 가치, 그중에서도 불교의 가르침을 추구하거나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도 유독 그 진가를 알지 못한 채 서양적 가치에 매몰돼 허우적대는 우리의 현실이 안쓰럽게 다가온다.

이윽고, 타이항공 소속의 대형 비행기가 힘차게 땅을 박차고 오른다. 이제 이 비행기는 두어 시간 남짓 지난 후 10명으로 구성된 우리 순례 일행을 카트만두 공항으로 옮겨 놓을 것이다. 기내 서빙을 하고 있는 타이항공 여승무원의 빼어난 용모도 구름 틈새로 얼핏얼핏 보이는 대륙을 향해 꽂힌 순례객의 시선을 돌려놓지 못한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세계 제1의 쌀 수출국 태국의 광활한 농토를 지나 인도대륙에 접어든 비행기가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한다. 기류가 복잡해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설산(에베레스트)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일 것이다. 밖을 바라보니 지루한 평원이 끝나면서 여기저기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하나 둘씩 그 웅장한 자취를 드러낸다.


<사진설명>스와얌부 나트에서 내려다 본 카트만두 시내.

마침 안내방송에서도 잠시 후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니 안전벨트를 조여 매 달라는 승무원의 목소리가 반복되고 있다. 비행기의 흔들림이 점점 심해지는 것은 어쩌면 붓다의 성지이자 세계의 지붕인 네팔에 당도하기 전, 히말라야의 산신이 사람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려는 조화일지도 모른다.

꾸웅-, 이윽고 드디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국제공항이라고는 하지만 카트만두 공항의 수준은 원시적이다.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아 입국 수속도 수기(手記)를 통해 할 정도이니 우리의 60년대 후반 수준일 듯싶다. 그래도 몸수색이나 짐 조사는 매우 까다롭다.

얼마 전 국왕의 친동생이 형을 살해하고 새로이 왕위에 오르면서 빚어진 정국불안 때문이란다. 게다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왕정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마오이스트, 즉 중국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코뮤니스트들의 폭동행위가 잇따라 관광객들의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번 성지순례가 목숨을 건 여정일 수도 있다는 가이드의 협박(?)에 벌써부터 두려움이 밀려온다.

불교 유물-전설 곳곳에

카트만두는 인구 70만의 해발 1281미터 지점에 위치한 네팔의 수도이자 심장이다. 강가(갠지즈) 강의 원류가 되는 바그마티강과 비쉬누마티강을 양쪽으로 끼고 있고, 고대도시들인 파탄과 박타푸르, 킬티푸르 등과 이웃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카트만두의 하얏트 리젠시(Hyatt Regency) 호텔에 짐을 풀기 무섭게 카트만두를 대표하는 불교사원 스와얌부 나트(Swayambu Nath)와 부다 나트(Boudha Nath) 참배에 나선다. 갈 곳이 많아 숨 돌릴 틈도 없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스와얌부 나트는 붓다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고, 부다 나트 또한 국제적으로 알려진 불교사원이니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스와얌부의 ‘붓다 전설’

스와얌부 나트로 가면서 차창밖에 펼쳐진 네팔의 느낌은, 개방과 함께 갈수록 순수성을 잃어가는 인도에서 염증을 느낀 히피들이 찾는 마지막 성소로 각광받는 것이 이해될 만큼, 충분히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네팔리들의 표정이나 움직임 등이 그렇게 종교적일 수가 없다.

종교적이란 게 어떤 것이냐고 따져 묻는다면 딱히 단정해 답할 수 없겠지만 그들의 일상에 배인 힌두적 삶의 깊이는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그 지독하다는 모슬렘조차 네팔 땅에서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채 200년이 못되어 쫓겨났을까. 저 순박한 미소 속에 감춰진 심원한 종교성, 네팔의 국교이기도 한 힌두의 저력은 실로 엄청난 에너지를 배태하고 있을 것이리라.


<사진설명>원숭이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사와얌부 나트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원숭이.

원숭이가 많이 살고 있어 일명 ‘원숭이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스와얌부 나트는 카트만두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우기가 아닌데도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애를 먹인다. 네팔이란 나라가 새내기 순례자에게 요구하는 입국 신고식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스와얌부 나트로 오르는 산길은 족히 십리는 넘어 보인다. 진입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마니차(손으로 돌리는 경통)가 이 나라의 높은 문맹율(81%)과 함께 사원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잠시 빗줄기가 잦아든 틈을 내어 스와얌부 나트의 중심 스투파로 올랐다.

네팔 사원의 특징이 고스란히 적용된 사원답게 조형과 가람배치가 독특하다. 중심 수투파 주위로 세워진 부도들의 세련미와 정교한 조각은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붙잡고 자궁을 의미한다는 하얀 돔(Dome)과 그 위에 선 번쩍거리는 황금 첨탑은 카트만두 어디서나 잘 보일 만큼 크고 웅장하다.
스와얌부 나트에는 붓다와 관련된 전승이 내려오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많은 곳을 순례하던 중 쉬라바스티(Sravasti·사위성)와 제타바나(Jetavana·기원정사) 승원으로부터 이곳 카트만두 계곡을 찾아 왔다. 붓다는 계곡 동쪽에 위치한 만쥬스리(문수보살·Manjushri) 동산에 머물면서 스얌부 언덕에 많은 예경을 올렸다.

또 제자들에게 설법하던 중 제자 미륵보살(Maitreya)에게 명하여 이곳 카트만두 계곡에 얽힌 설화적인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했다. 고타마 붓다가 이곳에서 가르침을 펴는 동안 지역의 주민들이 계곡을 기름지고 번영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에 붓다는 모든 제자와 신자들, 주변의 용왕까지도 모두 불러 모아 바르게 사는 길을 가르쳤다.

다산과 번영, 그리고 재난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사르바수카다 다루니(일종의 만트라)를 일러주었고 주변에 머무는 용왕들에게 비를 내리게 하는 경문을 알려주었다. 그 후 고타마 붓다는 네팔을 떠나 인도로 돌아갔다.”

〈계속〉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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