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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눈물

기자명 법보신문

해마다 5월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
“선생님 고맙습니다…건강하세요”

스승의 날이 있는 5월 중순쯤이 되면 나에게는 기억이 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이영희 선생님이 그 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담임 선생님은 30대 후반의 평범한 가정주부같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우리들에게는 항상 온화하고 다정스런 선생님이셨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계실 때는 강한 자기 주장 없이 조용히 뒤편에 앉아 계시면서 다른 선생님들의 말씀을 경청하시는 그런 분이셨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라 내가 다니던 서울 외곽의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한반에 학생수가 60명씩 되었고 그런 큰 반들이 한 학년에만 15반씩이나 되었다. 6학년이 되자 각 반별로 돌아가면서 1주일씩 주번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주번들은 학교 건물 안팎으로 배치가 되어서 등하교 시간과 쉬는 시간에 나가서 다른 학생들을 규율에 따라 지도하고 학교 물건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학교가 워낙 크다 보니 한 반 학생들 모두가 나가서 주번을 서야 되었다.

그런데 한번은 공교롭게도 우리반이 주번을 서게 된 때가 겨울의 막바지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이었다. 아침7시 45분부터 밖에서 서 있었던 우리들은 1시간이 넘는 8시50분쯤에야 교실로 다들 들어 올 수가 있었다. 그런데 추운 날씨 때문에 다들 몸이 꽁꽁 얼어서 무척 애를 먹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담임 선생님께서 조개탄과 나무받는 통을 들고 나가시더니 난로 땔감을 구해 오셨다. 우리들은 추운 몸을 녹이려 금방 나무에 불을 지펴서 난로 안에 넣었다. 조개탄도 같이 넣어 난로 주위로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몸을 녹였다.

그런데 큰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교감 선생님께서 나타나시더니 우리들을 보시면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아직 온도가 영하2도까지 안떨어졌는데 누가 허락도 없이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나? 너희 담임 선생님이 시켰느냐?” 갑자기 교감 선생님의 호통에 반 전체가 조용해지고 담임 선생님이 급히 나가 셔서 교감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셨다.

아이들이 주번을 서서 너무 추워 하는 것 같아서 아직 영하 2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난로를 피게 했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교감 선생님은 한 10분 동안 복도에서 큰 소리로 담임선생님을 야단치셨다. 복도에서 들리는 담임 선생님을 향한 교감 선생님의 꾸중에 우리반 아이들의 마음은 참으로 참담했다.

우리를 위해서 그러신건데 결국 담임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고 교실로 들어오신 선생님과 같이 반전체가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아이들이 돈을 모아 자판기 커피를 사다 드리면서 선생님을 위로해 드렸는데 그때 커피 컵을 두 손으로 잡으시면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애들아,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큰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사람들이 되거라.”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산수나 국어와 같은 많은 과목을 배웠지만 그것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선생님의 그 한마디는 줄곧 내 가슴에 각인돼 있다. 그 선생님이 지금은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 항상 건강하시고 편안하시기를 항상 간절히 발한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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