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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관련 학파 이론 섭렵해야”

기자명 법보신문

슈타인켈너 인터뷰

△인식논리학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호명되었는가 ?

이 질문은 내가 20년전 일본에 ‘spritual place of epistemological tradition in buddhism’ 을 강연하러 갔을 때의 상황을 기억하게 한다. 그 당시 내 앞에 앉아있던 청중들은 아직 인식논리학 전통이 어떤 식으로 불교전통과 이어지고 있다는 것조차 인정할 준비가 안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전통을 불교의 종교 전 전통으로부터 빗나간 것으로 여겼으며, 왜 이런 전통이 불교 내에서 발전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의 문화사적 환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정통 브라만적인 사유방식과 그와 나란히 존재하는 불교적 사유체계 중에 어떤 것이 더 타당한가를 비교해야 하는 계기들이 있었던 것이다. 즉 어떤 사유체계가 더 타당한 인식적 근거 위에서 보다 정확하게 우리네 삶을 해석하고 올바른 비전을 제시해 주는가 하는, 그 근거에 대한 질문 즉 인식론적 질문들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고, 이런 질문에 대해 각각의 사유전통들은 자기들의 전통적 사유체계가 최고임을 제시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불교도 역시 이 의무에서 제외되지 않았기에, 분석과 토론이란 수단을 통해 불교적 전통의 비교우수성을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붓다 자신의 언설 역시 이 분석이라는 수단을 통해 설득 가능한 그런 것으로 설명되어질 때에, 즉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되어질 때에, 명상 등의 수행으로의 변형이 가능하다는 사유가 확립된다.
이렇게 이런 불교적 자기사유체계의 정당화는 단순한 불교 내적 발전이 아니라, 전체 인도문화사적 시각에서 볼 때 바로 그 필연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필연성은 다른 인도철학적 전통 내에서도 똑같이 목격된다. 그들 역시 자기들의 사유체계를 정당성을 증명하고, 또 다른 사유체계 주창자들과의 논쟁하는 장에서는 자기 체계를 수호해야 하는 의무를 안게 된 것이다.

△불교 내부에서의 인식논리 전통에 대한 시각?

불교 내에서 본질적인 것은 선정 전통이다. 즉 붓다의 말씀에 기반한 완전한 정신적 완성이다. 바로 여기서 붓다의 말씀은 이미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론적으로 증명되어져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아비다르마적 해석 전통에 따라 인식론리적 이론에 의지함 없이, 더 나아나 이론적 관심 없이 오로지 실 수행에만 전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다른 사유전통들은 사실 이 인식논리적 이론에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대표적 예가 중관학파 특히 프라-상기까 (Prâsaìgika) 전통이 그런 입장이다. 그들은 결국, 인식논리학을 세속적 진리에 대한 것으로 한정시키면서 사실 세속적 진리를 밝혀내기 위해서라면 굳이 불교적 인식논리학을 고집할 필요조차 없으며 더 나아가 불교인식론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막강한 반대학파였던 니야야의 체계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한다. 찬드라끼-르띠(Candrakîrti, 月稱, 600-650)는 디그나가의 인식논리학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자신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스템 철학인 아비다르마나 유식 혹은 더 나아가 안티 시스템적 중관파 조차도 어떤 일정한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데 반해, 인식논리학 전통은 이들 시스템의 한 단면을 채택하면서 오히려 문제학(Problematik)으로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학적 관심을 갖지 않은 다른 불교도들에게는 거의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왜 다르마끼르티인가?

박사논문의 대상이었던 샹카라스와-민은 사실상 내 선생인 프라우발너의 선택이었다. 그 작업은 실제 초기 니야야 텍스트 내에서 철학텍스트들의 단편을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분량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따라서 바로 샹카라스와민에 제한을 두고 논문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업도 다시 두 가지 테마로 제한되어 이루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전지자로서의 이쉬바라 (戰vara)논증과 찰나성(kºanikatva)논증이었다. 특히 찰나성 논증의 단편 등을 통해서 나는 다르마끼르띠의 사유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결국 이 인물에 내 연구일생의 닻을 내리게 된다. 특히 샹카라스와-민이 인용하는 다르마끼르띠의 찰나성 논증 단편들은 대개 ‘헤투빈두(hetubinduh)’에 근거한 것이었고, 결국 ‘헤투빈두’는 나의 교수자격논문의 텍스트가 되는 계기가 된다. 그때 당시 우리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헤투빈두’의 티베트역이 전혀 이해될 수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티베트역의 교정편집 작업부터 해야만 했고,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해석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해서 나는 다르마끼르띠에 붙잡히게 된 것이다.

△다르마끼르띠의 매력은?

첫째, 그는 단지 소수에 속하는 높은 철학적, 언어적, 개념적인 수준을 지녔던 철학자일뿐만 아니라 간단히 말해서 그의 텍스트는 한 줄 한 줄이 분명한 의미와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언하건대 현대의 연구자들이 그의 문장 속에서 정확한 의미를 읽어낼 수 없다면 그건 다르마끼르띠의 잘못이 아니고 해석자인 연구자의 잘못이라고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르마끼르띠에게서 어떤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건 일종의 매우 영리한 오류이다.

그리고 둘째로 흥미 있는 점은 그의 모든 저작이 존재한다는 것과 함께, 또 전 저작을 통해 같은 테마를 반복해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우리 후세 연구가들은 문제학의 발전사를 볼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인도철학자 개인인 다르마끼르띠가 어떤 식으로 작업했는가 하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테마에 흥미를 갖는가, 그 테마 속에서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는가,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는가, 그리고 그 해결방식이 내포하고 있는 새로운 문제점을 발견하고 푸는데 사용된 여러가지 해결책을 어떻게 하나의 일관된 시스템으로 묶어내는가 등을 지켜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문제제기의 순간부터 마지막 저작인 <>에 이르기까지 인식논리학파의 태두적 인물인 디그나가를 뛰어넘고 있다. 이런 성격은 후대의 즈냐나슈리미뜨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지만, 이 철학자의 시스템은 다르마끼르띠에 비해 완결성에서 떨어진다. 그 외의 다른 철학가들에 있어서는 겨우 한 두 저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특징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작업 중인 다르마끼르티 자비량장 자주

수 년 전에 시작했던 논리학에 관한 다르마끼르티의 청년저작 다시 말해 自比量장 自註-에 대한 내 작업, 즉 번역과 주석작업-은 거의 끝나있는 상태인데, 지난 몇 년 사이 선행되어져야 할 다른 편집작업으로 인해 계속 마무리를 미루고 있는 상태이다. 그 텍스트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어떻게 청년철학자가 불교 전통 내에서 요구되는 전제들을 수용하면서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새로운 사유를 발전시켜나가는가 하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특히 이 텍스트는 다르마끼르티는 자신의 사유를 슬쩍 언급하는 정도로 빠른 전개방식을 취하며, 이후의 자신의 다른 여러 작업을 통해 초기의 관심과 문제되었던 주제들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 해결방식을 발전시켜 나간다. 따라서 이 초기 저작의 매 행 속에서 우리는 그가 지닌 사유의 탁월함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겠다. 연구가로서의 어려운 점은 그 사유의 탁월함 자체이기도 하지만, 사실 다르마끼르띠 이후의 주석가들의 영향이 큰 몫을 하기도 한다.

그 주석가들은 자기 자신들의 전통에 의거해서 다르마끼르티가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다르마끼르티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가능한 한 다르마끼르티와 그 주석가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드러내고, 동시에 그 주석가들이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드러내고자 한다. 특히 내가 이해하는 다르마끼르티와 주석가들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지점에서는 특히 주석가들의 의도를 해명하는 것이 주요한 내 작업의 한 일환이 되는데, 왜냐면 그런 해명 작업이 빠진다면, 내 해석도 그런 주석가들것과 유사한 일종의 ’해석 으로 남기 때문이며, 결국 내가 보는 다르마끼르티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진행중인 작업들

몇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는 불교인식논리학 전통에 속하는 텍스트적 기반을 개선하고 확장시키는 데 몰두해 왔다. 다시 말해서 불교학이 서양에서 그 싹을 틔운 이후 지난 근 200년에 걸친 발전의 시간 도안 불교전통에 속하는 많은 자료들이 네팔이나 스리랑카로부터 발견되어 유럽의 도서관에 비치되게 된다. 이들 필사본들은 대개 초판본의 형태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지난 십여년 국제적인 학술교류와 자료개방을 통해 그 자료들의 접근과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 시점에서 고전불교저작들의 비판적인 텍스트교정과 새로 발견된 자료들의 초판편집 등의 요구가 대두된 것이다. 왜냐면 결국 그런 텍스트 교정작업이 전제될 때래야 진정한 보다 더 발전된 해석작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은 결국 한편으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에야 입수가능해진 티베트에 발견된 산스크리트 텍스트들에 대한 교정작업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초기 티베트번역들의 교정작업이다. 이 자료들은 대부분 티베트대장경에 편입되지 않은 그런 것들이라는 점에 그 중요성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tapho발굴단이 발견해 낸 많은 양의 재료들을 정리하는 것이 바로 그 작업의 일환이다.

△젊은 인식논리학 연구생들에게

인식논리학 연구가들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의무는, 이들 텍스트들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산스크리트, 티베트어 정도만 익히면 돼 언어적으로 큰 부담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전제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인도철학 전통 내에서 불교 이외의 타 학파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불교에 반대해서 이론을 발전시켰던 미망사와 니야야학파가 그들로 꼽힐 수 있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텍스트 해석을 위한 기반이 다져지게 되며,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오는 10~20년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텍스트의 개척이다. 이를 위해 문헌학적 방법론 즉 정교한 텍스트 편집방법을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작업은 연구자 스스로의 연구를 위해서 뿐 아니라 다음 세대들이 새로운 해석학적 지평을 열어나가게 되는데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는 라후라 쌍끄리뜨야야나. 그가 이루어낸 작업의 질은 차치하고 그 양에 있어서 대단했던 인물이며,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중요한 인물이 프라우발너이다. 30 년대 이미 다르마끼르띠의 아포하론을 티베트역으로부터 번역, 해석해 내는 업적을 이룩했다.

그의 작업결과는 산스크리트어본을 이용할 수 있는 오늘날까지도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하다는 것이 그의 작업이 갖는 탁월성이다. 물론 이것은 우선적으로 티베트역의 우수성에 의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좋은 작업들이 앞으로도 요구되는 것은, 예를 들어 이 학파의 태두격인 디그나가의 철학체계조차 아직 그 대강의 윤곽만이 잡혀있는 상태에 머문 상태로 텍스트는 완결조차 되어있지 않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오늘날까지 아직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주요 테마영역이 있는데, 예를 들어 아포한(apoha)론이나 인식논리학적 찰나성이론 등은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영역을 제외한다면, 다른 테마들은 아직도 연구조명의 빛의 저 뒤편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철학사라는 시간을 따라 진전되어진 논증들의 내용은 텍스트의 교정편집과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해석작업은 아직도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이 모아져야 하는 분야로 남아있다. 당연히 해석분야에서 언급되어야 할 학자는 체르바츠키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그 관심의 넓이로 볼 때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 웅장한 해석적 작업의 근간이 되었던 문헌은 사실 인식논리학 텍스트로서는 포켓북 수준인 니야야빈두와 그 주석서 하나 정도였다.

게다가 매우 영민했던 그의 해석작업은 서양철학 특히 신칸트학파에 근거한 것이었기에 그는 많은 것들을 거의 의도적으로 잘못 보았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작업은 부분적으로 현재 극복되어 있는 상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인식논리학 전통 전체를 일관되게 조망해 보려 했던 그의 공헌을 대체할만한 작업은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 더 솔직히 말해 그 전통 전체는커녕 사실 다르마끼르티라는 중심인물 한 사람에 대한 심화된 통일적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효과적인 국제적 협업관계

이것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내 연구대상인 다르마끼르티의 경우를 살펴보면 설명이 될 것이다. 다르마끼르띠 철학의 깊은 의미는 실제로 국부적인 조명에 의해서 투철하기 매우 어렵기에 많은 연구자들이 현재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의 프라마나비니쉬짜야(Pramâòavini cayah)는 티베트역만이 존재했었으나, 지금은 천만다행으로 산스크리트 원본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최근에 발견되어, 그의 철학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전기적 시점에 우리는 서있다.

그러나 아직 텍스트의 비판적 편집을 거쳐야 하기에 그 시기는 조금 더 기다려야만 한다. 내 자신이 이 텍스트의 첫 두 장에 대한 텍스트 편집을 하는 중이고, 세 번째 장은 스위스 로잔 틸레만스(T.Tillemans)가 작업 중이다. 바로 이런 작업형태는 우리 분야에서의 국제적 협업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외에 나는 기본적으로 많은 일본학자들, 카츠라 (히로시마), 이와타 (도쿄), 미마키(교또)과 스위스 로잔의 틸레만스, 하버드의 반다커입 (van der Kuijp)등이 아주 밀접한 관계로 함께 작업하고 있다. 또 각별히 언급하고 싶은 학자는 일본 프라마나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카지야마인데, 개인적으로 1961년을 전후로 박사논문 작업 당시 많은 도움을 받은 이후 중요한 학문적 동지이다 (이 대화가 이루어진 시점은 바로 카지야마가 일본에서 운명을 달리했던 이틀 뒤였다).

△미래 불교학자들의 과제에 대한 일언

불교의 중요한 이념들을 현대사회에 알리고 현재의 문제들과 접목시켜 해석해내는 작업이다. 이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비불교적 전통의 배경을 가진 현대인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다. 사실 꼭 불교적 이념사에 국한할 것 없이, 인간은 특정 문화영역 속에서 발전해 온 다양한 사유들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그들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수단을 선택할수있는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즉 반드시 불교의 사성제란 개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불교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와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관심들을 2500년 긴 역사를 통해 발전해 나온 불교이념사라는 콘텍스트 속으로 연결내지 확장시키는 것, 이것이 현대 불교학자들의 해석 역량이 발휘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이런 과제는 현대사회의 불교학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제 불교 전 역사에 걸친 지식인들의 과제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마지막 불교적 형태인 탄트리즘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탄트리즘에 대한 연구성과들은 사실 이전에 존재해 왔던 많은 선입견들로 인해 상당히 왜곡되어져 왔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현대적 불교해석을 통해 내가 방금 언급한 선입견들 자체가 타당성을 부여받을 수도 있고, 혹은 무지의 산물이었다는 판정을 받게 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그 탄트리즘의 얼마만큼이 불교적 전통과 맥을 같이 하는지, 또 반대로 얼마만큼 불교본질과 무관한 각개의 문화적 전통과 환경으로부터 유입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런 문화상대적 요소들은 아직 너무나 적게 알려져 있다. 바로 이런 환경적 요인들과의 연결된 부분을 밝혀내는 작업을 통해 현대 불교학자들은 불교의 본질을 다시 새로운 환경에 이식시키는 작업을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 많은 서구인들이 티베트로 네팔로 불교유적지를 돌아보는 여행을 가지만 그 배경이 되는 사유체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들이 보았다는 사원과 불상들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오스트리아의 불교학자로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유럽의 조그만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불교학자로 연구활동을 한다는 것은 한국의 독자들이 쉽게 추측할 수 있듯 결코 자연스럽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한편으로 연구활동을, 다른 한편으로 연구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는 사람들을 찾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는 비엔나에서 발전시킨 연구방법과 내용을 익히기 위해 특별히 이곳에서 장, 단기간 체류하고 있는 혹은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젊은 학생들을 지원할 구체적 자원을 수중에 가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그런 젊은 학도들을 지원하려는 관심에 대해서 언제나 연구소 문을 열어두고 있음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연구소의 인터넷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www.univie.ac.at/ISTB/html/ger/home/istb-ho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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