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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자살, 고통의 탈출구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사회적 살인일 수 있지만 자기생명은 자신이 책임져야

2002년 11월8일 충남 천안에서 또 하나의 어린 죽음을 알리는 일기장이 공개되었다. 맞벌이 부부의 외아들 초등학교 5년생 정군이 여자 친구에게 채팅을 통해 자살을 예고한 지 열흘이 지나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정 군이 발견될 당시 아파트는 문이 안으로 잠긴 채였고, 집 안에는 정 군 혼자였다. 성격도 쾌활했고 친구가 많았다. 자살하기 하루 전에 친구와 채팅을 하면서 “나 지금 죽을 수 있다. 자살도구를 준비해 놨다. 바이바이” 라고 자살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일기장에도 자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답답한 세상, 답답한 인생. 난 죽고 싶을 때가 많았다. 답답한 세상과 꽉 막힌 인생 때문이었다.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신다. 어린이인 나는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학교와 학원, 10시까지 공부. 이틀 동안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 쉰다. 왜 어른 보다 어린이의 쉬는 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은 답답하다. 난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 어린이가 왜 어른들의 개조를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최근의 자살행렬은 개인적인 동기 보다는 광적인 교육환경이라든가 인터넷 자살사이트에 의한 자극, 혹은 불황과 실업이라는 사회적 격변에 따른 혼돈, 그리고 정치적 혼란이 사람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자살예비군’ 또한 갈수록 늘고 있다. 얼마 전 어느 상담기관이 서울시내 직장인 458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26%가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에서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86%나 됐다. 청년실업자 10명 가운데 4명은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 사회는 자살행위에 대해 동정적 시각이 강해서 ‘전염성’이 강할 뿐 아니라 잘못된 혈연의식이나 내세관의 영향 때문에 범죄행위나 다름없는 동반자살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자살의 사회적 원인 ‘사회적 자살’에 대한 연구와 대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행정단위 별로 자살예방센터를 두는 등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서 자살방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고실업시대의 자살은 더 이상 개인적 차원의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업문제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1년, 2년 사이에 바뀔 수는 없다. 특히 학업문제는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이 최근에 다양하게 제시되었지만, 자살숫자는 감소하기는커녕 계속 증가일로에 있다. 우리 사회의 자살현상은 사회문제 해결을 통해 감소하기를 기다릴 만큼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살하게 되는 원인으로 사회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기는 하지만, 자살행위의 책임을 전적으로 사회로 돌릴 수 있을까. 자기 생명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므로, 자살 행위의 궁극적 책임은 바로 자신이 져야 한다.

사회구조적 문제는 자신만 고통당하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이다. 자살을 사회적 살인이라고 말할 수 있기는 하지만, 자살로 잃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생명이라는 점, 자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큰 고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고 살아야지 사회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기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자기 삶을 어떤 방식으로 마감할 것인지 사려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남을 탓하거나 사회에 책임을 전가시키면서, 생명을 끊는 행위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자살은 ‘인간다운 삶의 권리‘와 ’존엄하게 죽음을 권리‘ 모두를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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