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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종교인 구상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4.05.17 14:00
  • 댓글 0

“원칙 지키며 종교벽 넘은이 시대 스승”


<사진설명>사진 왼쪽부터 중광 스님ㆍ김종규 회장ㆍ구상 시인ㆍ혜련 스님.

시인 구상 선생이 4월 11일 타계했다. 구상 시인은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불교적 정서를 가진 시를 많이 발표했고 종교를 넘나드는 열린 시각으로 불자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선생의 타계에 임해, 생전 선생과 깊은 교분을 누렸던 한국박물관협회 김종규 회장이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30여 년 전 고전읽기 국민운동이 펼쳐질 무렵 만나 의형제의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필자에게 구상 선생의 별세소식은 참으로 큰 슬픔이요 안타까움이다. 늘 원칙을 잃지 않았던, 그리고 종교의 벽을 넘어 당신의 마음세계 안에서 이미 종교적 회통을 이뤄냈던 선생은 우리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셨다.

선생과의 교분은 주로 절집에서 이어졌다. 필자는 선생만큼 불교를 잘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지식인을 만나지 못했다. 선생은 도쿄 니혼(日本)대학 종교학과에서 수학하면서 불교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분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대단한 것이었다. 노스님을 만나면 덥석 큰절을 올렸고, 부처님오신날이면 빠짐없이 연등을 공양했다. 선생과 교분을 나눈 스님이나 불자들이 한 둘이 아닌 것은 그분의 걸림 없는 성품을 짐작하게 한다. 마치 유언처럼 느껴지는, 마지막 시집의 ‘인류의 맹점에서’라는 시는 선생의 삶 속에 깊이 침잠해 있는 불교적 정서를 잘 보여준다.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시고/ 기어(綺語)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필자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동숭동 감로암에서, 걸레 중광 스님과 중광 스님의 법모(法母)이자 당시 이 암자의 주지였던 비구니 혜련 스님 등과 함께 선생을 자주 만나곤 했다. 1978년 경 찍은 이 사진〈사진〉을 선생의 별세를 당하고서야 다시 펼쳐본다. 공교롭게도 필자를 뺀 세분이 모두 이승의 인연을 접으셨으니 더욱 착잡하다.

끝없이 겸손하고 하심했던 선생을 보내면서 이 시대에 스승, 그리고 아름다운 종교인을 잃는 슬픔을 느낀다. 마음을 비우고 청빈한 삶을 살았으며,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도 자리를 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열린 종교인이셨던 선생의 극락왕생을 불보살님 전에 발원한다. 비록 불제자는 아니었으나 선생은 그리 기원을 드린다고 해도 아마 합장의 화답을 하실 것이라 믿는다.

5월 13일 김종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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