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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과 칭명

기자명 법보신문
명호 뜻 분명히 알고 간절히 불러야 ‘염불’

신심이 곧 불성 믿음 있어야 가피도


『관무량수경』「하품하생」에서 “하품하생의 사람은 착하지 않은 업을 짓고, 오역죄와 십악을 모두 갖추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악업에 의해 마땅히 악도에 떨어져 여러 겁의 고통을 끝없이 받겠지만, 목숨이 다하는 때에 이르러, 선지식이 갖가지 안심과 위로를 베풀고 묘법을 설하여 ‘염불(念佛)하라’ 함에도 고통의 핍박으로 인해 부처님을 생각하지 못하니, 착한 벗이 ‘그대가 만약 염불이 되지 않는다면 마땅히 무량수불을 부르라’ 하고 말했을 때, 이와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소리를 끊이지 않고 십념(十念)을 구족하여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기 때문에 생각 생각 가운데 80억겁 생사의 죄를 소멸하는 것이 중생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번뇌가 깊고 죄업이 무겁기 때문에 정토의 경계나 부처님의 상호를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임종시라도 참회와 믿음의 뜻을 실어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부르면 50억겁 80억겁의 생사의 죄가 소멸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관무량수경』에서 염불(念佛)과 칭명(稱名)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염불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고, 칭명은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부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때문에 염불을 전체적으로 말할 때는 ‘명호를 생각하고 부르라’고 합니다.

깨달음에 들어가는 문은 어떠한 방편 혹은 수행문을 선택하든지 지관(止觀)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은 염불수행에서도 분명하게 분별하고 있습니다. 칭명은 믿음을 성취하는 방편이며, 관상염불(觀相念佛)은 정토의 경계를 관찰하여 깨달음을 성취하는 염불선(念佛禪)입니다. 그러나 칭명염불을 하더라도 “아미타”라는 명호의 뜻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불러야 안심과 깨달음을 얻는 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염불을 가르치고, 염불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자신이 잡아 지니고 부르는 명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행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옛 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 부르다가 문득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염불인들이 숫자와 기간만 채우고 바라는 바가 성취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습니다.

염불은 마음을 쉬기 어려운 바쁜 생활인들을 위해 펴 보이신 대자비 방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있는 자는 모두가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무량한 자비광명 가운데서 호흡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진실로 믿고 염불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진실한 믿음 그 자리에 자비광명이 감응하는 것입니다. 불성(佛性)은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심이 불성입니다.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의 삶으로 변해가고, 부처를 관하는 그 순간은 바로 부처입니다. 무량한 자비광명을 믿고 생각하고 부르는 “나무아미타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목 스님
양산 정토원 원장 cafe.daum.net/amit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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