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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자살과 죽음의 다른점

기자명 법보신문

삶과 죽음, 단절 아닌 연속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일 뿐

“자살을 감행하는 순간 모든 자살자는 그들 삶의 이력과는 무관하다.”(장아메리) “죽어버리면 다 끝나는 거 아니냐” (고교 2년생 술을 먹다가 충동적으로 자살) “갑자기 사후세계가 궁금해지고 죽음이 기대된다. 내가 만약 환생한다면 지금 보다 훨씬 나은 세계에 살고 싶다. 이제 삶에 질리고 지쳤다. 원망스런 이 세상과 영원히 안녕이다.”(초등학생의 유서)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잘 되지 않아 답답하면 청소년은 주저할 것 없이 바로 리셋(Reset)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처음부터 깔끔하게 다시 시작된다. 지금까지 잘 진행되지 않아 골치 아팠던 상황은 그냥 간단히 포기해 버리면 된다. 주인공의 운명은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다.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최근에 남자 대학생이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할 때 리셋 버튼을 누른 것과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일이 있다.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청소년은 사이버 세계에서 통하는 리셋 버튼이 현실 세계에서도 통할 것으로 착각하고서 조금 어려운 일에 닥치면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일이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리셋 버튼을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삶을 맞이하려는 기대감으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겠다는 소박한 생각에 자살한다면 그 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죽음은 결코 게임이 아니다. 삶도, 죽음도 결코 게임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혹은 삶과 죽음은 단절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곤란, 헤어날 수 없었던 고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 결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온갖 고통을 모두 털어버릴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자살행위로 인해 부정적인 행위만 더 늘어나게 된다.

졸업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Graduation은 졸업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졸업은 학업이 끝나 학교를 마치는 것일 뿐이지, 졸업한 이후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자연현상도 마찬가지로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또 여름이 지나면 가을과 겨울로 이어진다. 어제는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은 내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오늘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내일 역시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은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성립된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단절이 아니라는 것, 죽음은 육신의 죽음일 뿐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죽음 이후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은 믿음이나 신앙 혹은 종교가 다룰 영역이 아니다. 큐블러로스가 말했듯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의 문제, 지식의 문제이다.

물론 불교에서는 죽음의 허망함, 사후에 만나게 되는 현상들이 우리 마음으로부터 투영된 현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죽음만 그런 게 아니라 삶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말은 죽음을 실체로 긍정하거나, 삶과 죽음이 허상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주장도 아니다. 다만 우리 존재가 실체가 없는 연기적 자아이듯이, 죽음 역시 인연의 집합이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달라이 라마의 말은 시사적이다. “죽음이란 끝이라든가 궁극적인 종말 같은 것이라기보다 다 낡아서 해어졌을 때 갈아입는 옷과 같은 것이다.” 죽음은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행위로, 육신이란 낡은 옷을 벗는 것에 불과하다. 인연이 다한 육신의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통과의례임을 직시한다면,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고, 죽음은 새로운 시작임을 알 수 있고, 또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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