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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

기자명 법보신문
정 병 조
동국대 교수




사바세계의 일이려니 하면서도 너무도 실망스러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정치판은 싸움으로 지새우고, 사회 또한 못살겠다는 아우성뿐이다. 그나마 한줄기 위안이 되는 것은 가끔씩 들리는 미담 소식이다. 엊그제는 한 택시회사 사장이 70억 원을 장학금으로 희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돈의 액수도 엄청나지만, 선뜻 좋은 일에 쓰라고 내놓는 마음씨가 아름답다. 또 교보생명은 상속세로 1250억 원을 납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회사들이 기껏 몇 십억 원, 많아봐야 300억 원 정도를 납부한 것에 비하면 가히 놀랄만한 정직성이다. 재벌회사의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머리를 짜내서 절세를 하고, 또 칭찬을 받았을까 생각해보면 새삼 정직한 사람들의 용기가 가상하다. 언젠가는 김밥 파는 할머니가 1억 원을 절에 희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할머니라고 해서 돈 아까운 생각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돈은 모으기도 힘들지만 값지게 쓰는 것이 훨씬 어려운가보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솟구치는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남에게는 보시를 말하면서 스스로는 얼마만큼 베풀었는가 하는 자괴의 마음 때문이다.

부처님은 재가신자들의 재산 사용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육방예경』에는 동서남북 사방과 상하를 합한 여섯 방위에 고마움의 뜻을 표한다는 설법이 나온다. 국가나 부모, 스승이나 부처님 은혜는 일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노비와 중생의 은혜라는 말씀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 사회의 그늘진 곳을 외면하고 있다. 가난하고 굶주린 이 중생들이 없다면 현란한 도회의 불빛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또 재가신자들이 재산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 ‘정직과 근면’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그 관리에 관해서도 언급한바 있다. 우선 수입의 1/3은 반드시 저축하라고 말씀하신다. 1/3은 불사, 1/3은 생활비에 충당하라는 조언이다. 마치 기독교의 십일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변화가 강조되고 있다. 삼법인(三法印)의 불교적 가치로 말한다면 별로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 명제이다. 이 변화에 대하여 가장 둔감한 이들이 이른바 기성세대며 기득권자들이다. 그러나 변화는 이 시대의 흐름이자 철리(哲理)이다. 따라서 변화의 속도가 문제인 것인지 변화 자체에는 타당성 논란이 있을 수 없다. 불교는 오랫동안 현실에 안주해 왔다. 사찰의 분위기, 신도들의 의식자체가 다분히 전통 묵수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꿔야 세상이 바뀌는 법이다. 변화를 외면하는 것은 갈대구멍으로 하늘을 보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불교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우선 사찰의 기능이 다변화되어야 한다.

문화재를 지키고, 관광의 명소로서의 이미지를 변화시켜야 한다. 절은 스님들이 수도하는 도량이며 이 사회를 위하여 노력하고 봉사하는 곳이라는 쪽의 질적(質的)변환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불교학의 영역 확대이다. 과거의 불교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훈고학적 특징을 지녔었다. 또 일부의 지적(知的)집단에 의해 독점되어 왔었다. 그러나 미래의 불교학은 응용불교로 전환해야만 한다. 오늘의 잡다한 문제들에 대해서 불교적으로 조명하는 반야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끝으로 불자들의 의식전환이다.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일이 불교를 믿는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가 믿는 불교를 현실 속에 적용시켜야 하며 나와 이웃에 대한 연민과 자비를 실현해야 한다. 불교는 중생과 함께 할 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지 말고, 오늘의 현실 속에 점화(點火)하는 용기가 이 시대 불자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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