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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특집섹션 - 美-이라크 연등 함께 만들었다면 전쟁없었겠죠

기자명 주영미
  • 사설
  • 입력 2004.05.24 14:00
  • 댓글 0

한나래재단, 외국인 60명 연등 만들기 현장



“Today, Making Korean Traditional Lantern is very short. But It’s valuable time.”(오늘 전통 연등 만들기 시간은 매우 짧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이다.)

5월 16일 오후 2시 부산 한나래문화재단 홍법사 법당엔 피부 색도, 얼굴 생김도, 종교도 다른 외국인 60여명이 꽉 들어찼다. 거의 대부분이 불자는 아니다. 삼삼오오 사이 좋게 모여 앉은 외국인들의 눈은 한나래문화재단 이사장 심산 스님과 한국인 자원 봉사자들의 손 동작에 고정돼 있다. 이날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은 ‘한국 전통의 연등 만들기’, 연등에 무슨 뜻이 담겼으며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알리 만무하다.

“연등(燃燈)은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무명의 세계를 밝게 비춰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고자 밝힙니다. 하나는 자신이 지혜롭게 살겠다는 원력을 담아 만들고 다른 하나에는 이웃을 위한 소망을 담아 보세요.”
봉사자들의 연등에 대한 영어 설명이 이어지자 외국인들의 눈빛이 더욱 빛난다. 부처님이, 연등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알 순 없지만 그 의미만큼은 듣는 이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자, 오색 한지와 연잎에 풀을 발라 철사 줄기에 맞춰 조심스럽게 바르세요. 연잎의 붉은 물이 손끝에 들 듯 마음의 어둠이 있다면 밝은 빛으로 물들어 갈 것입니다.”
심산 스님의 법문 같은 설명에 외국인들은 무릎을 탁 치며 염화미소(?)를 짓는다. 마음으로 와 닿은 지혜가 있다. 재한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와 부처님오신날을 알리기 위해 실시한 이날 행사는 한나래문화재단이 외국인 포교를 위한 76회 문화포교 프로그램으로, 주제는 ‘Making Korean Traditional Lantern’(연등 만들기)이다.

‘연등을 만들어 보겠다’며 홍법사 법당에 발을 들인 재한 외국인들은 미국이나 호주 등 기독교 문화권이나 인도네시아의 이슬람교, 인도의 힌두교 등 저마다 다른 종교의 문화권에서 살다 한국으로 이주해 부산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심산 스님은 불교와 부처님오신날을 상징하는 불구인 ‘연등’에 대한 설명을 초등학생에게 하듯 꼼꼼히 하려 애썼고 외국인들은 초등학교 종이 공작 시간으로 돌아간 듯 진지하기만 하다. 서너 명의 외국인이 모여있는 책상 옆에는 영어 회화가 가능한 통역 봉사자들이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과 시연을 곁들여 이해를 돕는다.

외국인들이 직접 만든 등은 팔각 등과 연꽃 등이다.
“만약 연등 만들기와 같이 이라크와 미국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면 전쟁이 일어났을까 의문입니다.”
풀칠한 연잎이 힘없이 흐늘흐늘해져 급기야 연잎 한 장을 버리며 안타까워하던 미국인 스티븐(28) 씨가 의미 있는 말을 던진다. 한국에 온지 1년이 된 그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하는 연등 만들기 작업을 하다 보니 불교의 생활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나 아닌 남을 생각하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위한 등을 만들었다”며 활짝 웃는다.

시나브로 두 시간이 흘렀다. 팔각 등의 철 살은 하얀 창호지를 입은 뒤 분홍 빛 연잎으로 한껏 맵시를 낸다. 연등 만드는 과정은 불교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 속도는 느리지만 촘촘히 체감하게 하 수행인 듯 하다. 통역 봉사를 맡은 박연희(32) 씨는 “그 동안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봤지만 이번만큼 질문이 많았던 적이 없었다”면서 “외국인 대부분이 5월 23일 열리는 제등행렬에 자신이 만든 연등을 들고 동참하기로 했다”며 만족해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슬로바키아, 미국 등 12개국의 이웃 종교인들은 모두가 평등하게 팔각 등과 연꽃 등 2개의 등을 완성해 나간다.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는 나를 위해 다른 하나는 이웃을 위해, 하나의 등은 외국인 모두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자성의 등이, 다른 하나는 이라크 등 전쟁으로 고통받는 지역의 난민들을 위한 자비의 등이 될 것이다.
3시간 동안의 짧은 전통 등 만들기는 동참자들이 말했듯이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욱 짧기만 했다. 연등을 들고 법당을 나서는 외국인들의 마음은 이미 제등행렬의 복판에 있는 듯 가볍기만 하다.

부산지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2개국 기독-이슬람-힌두교인 동참
“종교 달라도 자비 실천” 제등행렬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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