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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룸비니 동산

기자명 법보신문

“위대한 선언…삼라만상 환희에 젖다”


<사진설명>룸비니 동산에 있는 승원터.

아쇼카 대왕 석주 발견 돼 붓다 탄생처로 확인

마야데비 사원 공사 한창…사라수엔 힌두신상



삶이란 무엇일까. 선택의 이어짐은 아닐까. 살아가면서 부딪쳐야 하는 숱한 양 갈래길들. 그 순간마다 내린 판단들이 삶의 질을 가르는 기준일 것이다. 이런 이치로 한 사람의 인생은 자연히 그가 한 평생 동안 해온 선택의 옳고 그름에 따라 그 성패가 갈라진다는 등식도 성립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종교도 철학도 우리들의 삶에 있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지침이나 가치관 중의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 바르게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그 교주의 가치관과 선택의 원칙을 잘 알아차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룸비니 동산에 서서 ‘붓다의 선택’을 생각해 보았다. 80년의 결코 짧지 않은 일생동안 붓다가 보여주었던 그 숱한, 더구나 완벽했던 선택들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니 룸비니 동산에 대한 감회가 다르게 다가온다. 누구든 붓다가 일생을 통해 보여준 올바른 선택의 기준들을 체득할 수 있다면 그의 인생은 매우 고귀한 가치를 갖게 될 것이리라.


<사진설명>룸비니 아쇼카 석주.


불전의 기록에 따르면 붓다는 도솔천에서 하강의 시기와 장소 등을 고민했고, 어떤 방법으로 사바세계에 등장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어떤 지위와 신분을 가진 이를 부모로 택할 것이며, 태어날 나라는 어떤 곳으로 할 것이며, 어떤 때를 맞추어 하강하면 좋을 것이고, 도대체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는 당위를 어떤 것으로 정할 것인가 등등 수없이 많은 조건들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결과론적 이야기에 지나지 않겠으나, 붓다가 철학적 사고가 깊은 나라, 계급이 뚜렷한 사회로 인간의 존엄과 평등성에 대한 난제와 고민이 많은 나라 인도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출생신분을 바라문이 아니라 계급 간 소통이 비교적 원활한 크샤트리아로 고른 것, 또한 대국의 황제가 아니라 소국의 왕을 부모로 택한 것, 탄생의 시점을 고대 또는 원시사회가 아니라 사유와 철학의 깊이가 어느 정도 성숙한 시기로 잡은 것, 태어나서 외친 첫 일성을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제각각 가장 존귀한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정한 것 등은 붓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도솔천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사바에서 펼칠 삶의 모습에 대해 고뇌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사라수(무우수) 아래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도솔천에서 하강하여 카필라 국 마야데비 (Mayadevi) 왕비의 태를 통해 마침내 사바세계의 땅에 두 발을 내딛는 장엄한 광경을 떠올려 보기 위함이다. 붓다가 탄생하는 순간 일어난 모든 이적의 기록들을 교조주의적 종파를 신봉하는 이들처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은 없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붓다의 탄생이 주는 인류사적 의미가 매우 각별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붓다가 사바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삼라만상이 환희에 젖는다. 그 숭고한 발에 흙을 묻게 할 수 없기에 땅에서 연꽃이 저절로 솟아 붓다의 두 발을 떠받친다. 어디선가 찬탄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고, 하늘에선 꽃비가 내리고 있다.”
경전 중에서도 붓다의 탄생은 가장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는 부분이다. 각 불전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 요지는 대략 이렇다.

〈마야데비 왕비가 당시의 관습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집으로 향하던 중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휴식을 취했다.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한 동안 서 있는 동안 갑자기 출산의 고통이 찾아왔다. 이때 마야데비는 사라수 나무의 늘어뜨린 가지를 붙잡고서 장래의 붓다가 될 아이를 낳았다. 브라흐마(힌두교의 창조주, 불교에서는 범천)가 두 손으로 아이를 받았고, 다른 신들과 천녀들은 그녀를 시중 들었으며, 하늘에서 더운 물과 차가운 물 두 줄기가 뿌려져 아이를 씻어주었다. 사라수 옆으로 아이를 낳은 후 왕비의 몸을 씻기 위해 기름 가득한 연못이 생겨났다.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 사방을 차례로 둘러본 후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음을 걸었다. 그때 그가 밟았던 걸음마다 땅에는 연꽃이 피어올랐다. 이윽고 붓다는 걸음을 멈추고 한손으로는 하늘을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외쳤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가장 존귀하도다. 일체의 모든 괴로움 내 중생들을 위해 기필코 그치게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無安 我當安之). 이는 나의 마지막 탄생으로, 이제 더 이상의 태어남이 없을 것이다.’

선언이 끝나자 일곱 가지의 기적이 생겨났다. 천지가 진동하고 바람은 흐름을 멈추었으며 새들이 은신처를 찾고 모든 초목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고요와 평화가 온 땅을 지배했다.〉

붓다의 탄생선언을 놓고 일각에서는 인류사 최초이자 최고의 인권선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붓다의 선언은 인류의 범주를 넘어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차별 없는 존귀함을 선포한 선언이라고 해야 더 적합하다. 생각해보라. 이 위대한 선언이 있었던 환희롭고 장엄한 현장에 와서 그 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 어떻겠는지를. 붓다 출현의 의미, 붓다가 이 세상에 온 것을 두고 일대사(一大事)의 인연이라고 부르는 연유를 지금 나는 온몸으로 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붓다시대에도 룸비니는 많은 초목과 사라수의 그늘이 우거진 매우 아름다운 동산이었다고 전한다. 아름다움을 나눌 수 없어 샤카족과 콜리야 족이 공유하고 있었던 곳이라고도 한다. 붓다의 탄생설화를 입증하듯 지금도 룸비니 동산의 남동쪽으로 기름강(Oil River)이라는 이름의 하천이 흐른다.

오늘날 이렇게 룸비니를 순례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아쇼카 대왕과 독일의 고고학자 휘러의 덕이다. 아쇼카 대왕이 이곳에 붓다의 탄생성지임을 밝히는 석주를 세우지 않았던들, 고고학자 휘러가 그 석주(石柱)를 발견하여 발굴에 나서지 않았던들 이곳이 불교성지로서 오늘날과 같은 위치를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붓다의 성지순례를 하는 이들은 예외 없이 아쇼카 대왕과 휘러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마땅하다.

아쇼카 대왕이 룸비니에 세운 석주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야다시(아쇼카의 다른 이름) 왕은 즉위한 지 20년이 지나 친히 이곳을 참배하였다. 여기 붓다 샤카무니께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이곳에서 위대한 분이 탄생했음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며, 이에 룸비니 마을은 조세를 감면하고 생산물의 1/8만 징수케 했다.”
룸비니 동산 유적 순례는 아쇼카 대왕의 석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쇼카의 석주에 남은 명문이 이곳을 위대한 스승, 인류와 하늘 세계의 대도사가 태어난 성지임을 일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석주 뒤쪽, 연못 너머로는 마야데비 왕비가 잡았던 아름드리 사라수가 버티고 서 있고 그 앞쪽에 막 붓다를 출산한 왕비가 목욕을 했다는 싯다르타 연못이 있다. 원래는 자연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으나 몇 해 전 일본불교계에서 비용을 대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곳을 다시 찾은 순례 객의 상당수가 예전의 모습이 더 좋았다고 한다니, 유적 발굴과 보전 사업이란 돈을 들인다고 해서 좋을 일만은 아닌 듯싶다.

아쇼카 대왕의 석주 바로 옆에 위치한 마야데비 사원은 현재 한창 공사 중에 있다. 사원터는 가건물로 덮여져 있고 내부에서는 발굴 마무리 및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이곳에는 붓다의 탄생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있고, 붓다가 탄생할 때 처음 내딛은 발자국이라는 것이 유리관 속에 보관돼 있다. 그런데 업장이 두터운 탓인지 내겐 영 발자국 모양이 보이지 않는다. 순례객 중 몇몇이 ‘이것이 부처님 발자국’이라며 손가락으로 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지만 아리송하기는 매한가지다.

싯다르타 연못가에 반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될 순례를 앞두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꽤 더운 날인데도 귓가를 스치는 바람은 청량하고 부드럽다. 붓다의 탄생지에서 좌선을 하니 마음의 산란함조차 일거에 사라진 느낌이다.
지금 서 있는 사라수는 마야데비 왕비가 잡았던 것의 증손자뻘 되는 나무다. 지금은 고목이 된 이 나무 아래에 어김없이 힌두의 신이 모셔져 있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불교유적 힌두 유적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힌두 신을 모셔놓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인도에서 힌두교의 영향력은 혜량이 불가능하다.

어느덧 룸비니 동산에 저녁노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룸비니는 일몰도 장관이다.


<사진설명>마야데비 왕비가 잡았던 아름드리 사라수. 힌두신상이 놓여 있다.


<사진설명>붓다가 탄생할 때 처음 내딛은 발자국. 유리관 속에 보관돼 있다.


<사진설명>석주의 명문. 붓다 탄생지임을 밝히고 있다.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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