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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자살 결정할 권리 있는가

기자명 법보신문

우리에게는 자살 할 권리 아닌
존엄하게 살다 죽을 권리만 있다

“자살은 절대적 개성 즉 자기 존재가 자기 자신에게 속한다는 것의 절대적 표현이며 절대적 정체성의 표현이다. ‘자살하겠다’는 결정은 자유로운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프랑스의 장 아메리처럼 자살하는 사람은 자살의 자기 결정권, 자살의 권리를 주장한다. 자살을 통해서만 자기 존재의 절대적 개성, 절대적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E여대 신문의 기자로부터 “자기 뜻에 따라 자살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일이 있다. 기자는 다짜고짜 자기 생명은 각자 알아서 할 일이 아니냐, 자살권이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확인만 받으려 했다. 그런 질문밖에 할 게 없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어 전화를 그대로 끊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이렇게 생각한 끝에 자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은 자기가 자기 생명을 끊는 행위이다. 살인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이다. 장 아메리의 주장대로 인간에게 자살할 권리가 부여되어 있다면, 살인의 권리 역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자살이든 살인이든, 다만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냐, 다른 사람이냐에 따라 자살 혹은 살인으로 구분되는 것일 뿐, 생명을 훼손한다는 의미에서는 똑같은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사회에서 자살의 권리와 살인의 권리가 인정된다고 한다면, 인간의 존엄함을 더 이상 입에 올릴 수 없을 것이고, 나아가 사회가 성립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과 다른 게 무엇이 있겠는가? 따라서 자살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되기를 원하는 격이다.

자기 존재가 자기에게 속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인데, 굳이 자살함으로써 이를 주장해야 할까. 자살은 자기 존재를 소멸시키는 행위이므로, 절대적 정체성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폐기시키는 행위이다. 인간답게 살다가,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존재를 주위 사람에게 아름답게 각인시키는 행위, 자기 존재의 절대적 정체성을 재확인시켜 주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자기 생명을 자기 멋대로 정한다는 자살의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다. 생명은 자기 소유가 아니다. 노자는 ‘생이불유’(生而不有) 생명을 낳았으되 자기 소유로 삼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자기 생명이든 자녀의 생명이든,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자살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또 부모가 자녀와 함께 동반 자살하는 것 역시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키워 주기는 할지라도 자녀의 생명을 함부로 좌지우지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자살의 권리가 있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권리’와 ‘존엄한 죽음의 권리가 있다.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다가, 인간으로서 존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기본권 보다 우선된다. 인간답게 사는 권리를 우리는 한번쯤 생각해 보았지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생각해 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편안하고 밝게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인간답게 살았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도외시했지만, 인간다운 죽음의 방식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살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런 권리를 일거에 파기시키는 행위이다. 다른 어떤 기본권보다도 우선되는 기본권, ‘존엄한 죽음의 권리’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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