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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과시병’ 심각하다

기자명 법보신문
공 종 원
언론인




지난 5월초에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한중 축구전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던 사람들은 황당한 경험을 했을 것 같다.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을 확정짓는 경기라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의 결과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올림픽 축구팀이 고질병이던 득점력부족의 걱정을 씻기라도 하듯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닌 중국팀을 상대로 2대 0으로 쾌승한 것은 경사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감격의 순간에 불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골을 넣은 선수가 벌이는 이른바 골 세레머니를 보면서 황당함과 면구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묘한 체험을 해야했다. 골을 넣은 선수가 그라운드를 달리다가 땅에 무릎을 꿇고 두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 되었던 것도 그렇거니와 경기 종료와 함께 기독교인 선수들끼리 서로를 독려하며 운동장에 둘러앉아 통성 기도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도 너무나 인위적인 선교행위라서 한심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날 선수들의 집단행동이 자신들의 자발적 선택이었는지 코칭 스탭의 지시였는지 아니면 이들 선수들의 종교생활을 지도하는 목사의 조장에 기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들이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맨으로선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한 것에 틀림없었다. 우선 이들은 한 팀의 선수가운데서 기독교신자가 아닌 선수들과 편가름하는 분열주의적 행태를 일부러 보였고, 국록을 받으며 국가대표로 출전하고서는 자신의 종교를 위해 봉사하는 분수와 책임을 모르는 행동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대부분은 기독교인이 아닌데 자의적으로 특정종교색을 과시함으로써 종교색없이 자신들을 응원해준 타종교를 믿는 국민들을 모독하는 결과를 낳고만 것이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이 스포츠맨의 기본적 예절과 자세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과문한 탓으로 필자가 보기에 경기에서 이기고 특정종교의식을 갖는 행태는 우리나라의 모 여자배구팀이 세계적인 효시였던 것 같다. 그 팀은 한때 우리나라 최강의 전력을 갖고 있어서 몇 해 동안 연승하는 성적을 올릴 수 있었고 그때마다 그 팀의 여자선수들이 코트에서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행태가 가능했던 것은 선수와 감독의 종교가 기독교일색이거나 그 팀을 지원하는 소속사가 기독교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기업이어서 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행동에는 마음으로 호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을 이들이 몰랐던 것 같다. 아예 선교목적의 운동팀이 아닌 이상 그런 행동이 기업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깊은 검토가 없는 행태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전파되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 세상에 유명한 운동경기 선수로 기독교인이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닐 터인데 유독 우리나라 선수들만 왜 경기장에서 이런 괴상한 행동을 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세상이 알아주는 기독교국가의 선수들도 종교색은 내세우지 않는데 어째서 우리나라 기독교인 선수들만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는 그야말로 촌스럽다고 할까, 왜곡된 종교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밤에 도시마다 휘황하게 불을 밝히는 수많은 교회의 붉은 십자가상이라고 한다. 우리의 이런 ‘종교 과시병’ 에 대해서 이제는 차분히 반성할 때가 된 것 같다. 최근 자서전을 출간한 한국 기독교계의 원로 전택부 서울YMCA명예총무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수를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게 믿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 불자들도 곱씹어 볼만한 말이란 생각이다.

gong007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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