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 죽음 기다리는 사형수들

기자명 법보신문

참회하며 ‘삶’ 회향…사후 신체 기증

사형수들의 마지막 모습은 죽음 준비와 관련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1997년 12월30일 막가파 두목 최정수를 비롯해 여의도 차량 질주 사건의 김용제, 경찰관 총기 난사 사건의 김준영 등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모두 1634명이 사형당했다. 사형을 집행 당한 범죄자들은 이윤상군 유괴 살해범 주영형을 비롯 안성 농협 카빈총 강도 살인 사건의 최은수, 지존파 일당과 서진 룸싸롱 범인들 같이 세상에 공포와 전율을 안겨 주었던 희대의 살인범들이었다.

폭력조직 막가파 두목 최정수는 공범 2명과 함께 96년 10월5일 새벽 2시 서울 강남구 포이동 빌라에서 일제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단란주점 주인 김경숙 씨를 훔친 승용차에 태워 수원으로 납치했다. 범인들은 이날 낮 12시쯤 경기도 화성군 송산중학교 염전 내 소금창고에 너비 3m, 깊이 1.5m의 구덩이를 판 뒤 그를 산 채로 밀어 넣고 흙을 덮어 살해했다. 가족의 가출 신고를 받은 경찰은 28일 오전 5시쯤 경기도 광주에서 범인들을 검거, 추궁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 받고 29일 오후 사체를 발굴해냈다.

범인들은 모두 편부와 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고 청소년기에 본드 등을 흡인했던 폭력 전과 2∼6범이었다. 최정수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 할머니 손에서 컸고 어머니는 그가 사형수인지조차 모른다고 한다. 최정수가 경찰에 체포된 직후 가진 일문일답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엿볼 수 있다. ‘막가파’란 막가는 인생이란 뜻으로, 어차피 못사는 집에서 태어나면 평생 못사는 것 아니냐, 구차하게 살기 싫었고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98년 3월 9일 SBS ‘추적, 사건과 사람들’에 방영된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의 48시간’을 통해 사형이 확정된 기결수들의 교도소안 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프로에 등장한 사형수들은 막가파 최정수를 비롯 여의도 차량 질주 사건의 윤용제, 아버지를 살해한 김진태, 변심한 애인을 살해한 김인제, 애인을 위해 강도살인 사건을 저지른 김종화 등이다. 최정수, 윤용제, 김종화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몇 달 전인 97년 12월 3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미 확정된 죽음 앞에서 잉여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악범 시절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화면을 통해 변한 모습을 보게 되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더라도, 그것은 한때의 실수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구속 당시에는 표독스럽던 흉악범이더라도, 100명 가운데 99명이 종교에 귀의해 짧은 기간이나마 반성하면서 착하게 살다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선량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사형수들은 참회와 함께 불우 이웃을 위해 영치금을 맡기는가 하면, 몸뚱이를 통째로 기증한 후 마지막 길을 떠나는 감동을 숱하게 보여준 바 있다.

94년 친구와 함께 자신의 변심한 여자 친구를 납치, 살해한 뒤 여자 친구의 부모에게 몸값 1억 원을 요구했던 김인제(35)씨도 95년 7월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판결을 받은 뒤, 불교에 귀의해 독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던 중 7년 만에 사형수의 멍에를 벗게 되었다. 3대 독자였던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9년 전. 대기업에 입사해 재벌의 딸과 사랑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이 화근이었다. 약혼식 날 심하게 무시를 당한 그는 끝내 약혼녀를 살인하기에 이르렀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일매일 시달리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로 다가선 것은 불교 가르침에 접하면서부터. 불교에 귀의하면서 비로소 참회했고 남을 위해 기도하는 법도 배웠다. ‘기도를 하다가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2002년 9월 1000일 기도에 입재했다. 정권 말기에 사형이 집행되리라는 소문이 파다했으므로,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그는 짧았던 삶을 정리하고 있었다. 1000일 기도 중 200일 회향을 마친 며칠 뒤 무기수로의 감형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금도 그는 매일 108배 기도정진을 하면서 참회의 시를 쓰고 있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