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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가 뭐길래…

기자명 법보신문
윤 청 광
방송작가



옛 스님들의 행장기를 취재하다 보면 참으로 멋진 사연들을 만나곤 한다. 특히 감투를 둘러싼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할 때면 역시 스님들이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속에서야 반장, 이장, 구장, 면장, 감투를 놓고도 서로 자기가 그 감투를 차지하려고 악다구니를 쓰지만 절집 안에서 감투는 피해야할 대상이었고, 심지어는 감투를 쓰지 않으려고 종적을 감추는 일까지도 비일비재 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중 벼슬, 닭 벼슬만도 못하다”는 말이 생겨났고 “주지 자리 하나에 지옥이 삼천개”라는 말로 감투 쓰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40~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절집 안에서의 감투는 탐내는 대상이 아니었다. 이 세상 온갖 부귀영화 모두를 뜬구름 같고, 물거품 같고, 번갯불과 같은 허망한 것이라 여기고 삭발 출가한 수행자의 본분에 그까짓 절집안의 감투가 무어 그리 대단했으랴.
절에 사는 모든 대중들이 대중공사를 벌여 어떤 덕망 높은 스님을 만장일치 주지스님으로 선출해 놓았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주지스님으로 추대된 그 스님은 이미 바랑 하나 짊어지고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없었다. 주지 감투 쓰는 게 번거로워 행방을 감춰버린 일은 흔한 일이었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 불교계의 최고지도자인 종정(宗正)을 지내신 어느 큰스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 일도 있었다. “만일 자네가 주지를 하고 싶으시거든, 기왕에 있던 절 주지 할 생각 말고, 새 절을 자네 힘으로 세워서 그 절 주지를 하도록 하게나.” 이 때부터 이미 주지 자리를 둘러싸고 서로 좋은 절 주지 자지를 차지하겠다는 경쟁 아닌 경쟁이 벌어질 것을 감지한 큰스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지 자리 때문에 시비에 휘말리지 말라”고 경계하신 것이었다.

그동안 세상은 참 무섭게 변해서 좋은 절 주지 자리 때문에 별의별 창피스런 불상사가 많이 일어났고, 별의별 추잡한 사건도 발생했으며, 그 알량한 불교 교단 내의 종단 권력을 서로 차지하려고 별의별 일이 여러 번 벌어졌다. 그리고 온갖 추악한 모습을 온 세상에 다 드러내놓고 전국민들로부터 치욕적인 지탄까지 받아야 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치사하고 부끄럽고 창피스럽고 치욕스러운 불상사가 일어난 이후,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이제야말로 끝장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랬는지, 서로 말을 삼가고, 서로 행동을 조심해서 그나마 몇 년 동안 아슬아슬하게 조용히 잘 지내고 있다.

이제 우리 불교 교단에 태평성대가 찾아 왔는가? 이제 우리 불교교단에 화합과 협력의 시대가 도래 했는가? 이제 우리 불교계도 철이 좀 들었는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대로만 조용히 수십 년만 더 갔으면…’ 하고 빌지 않는 불자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어느 사찰 주지 임명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어나는걸 보고,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격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또 그 감투싸움을, 그 더럽고 치사한 감투싸움이 또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고.

출가 수행자는 서로 감투를 안 맡겠다고 종적을 감추는 게 옳다. 출가수행자는 서로 좋은 절을 안 맡으려고 나서야 옳다. 출가수행자는 하루라도 빨리 감투를 벗어던지려고 나서야 옳다. 그러나 정반대로 출가수행자가 단 하루라도 감투를 더 쓰겠다고 버티며 발버둥을 친다면 이런 모습은 추하기 그지없다. 더더구나 파문을 일으키며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세속에서의 감투싸움을 보는 것보다도 더 추하게 느껴진다.

출가수행자는 누구나 감투를 돌같이 보아야 멋있고, 감투를 스스로 벗어 던질 줄 알아야 참으로 멋있다. 더 맡으라고 붙잡아도 벗어던져야 할 것이 절집안의 감투라고 했거늘…. 도대체 감투, 그것이 무엇이라고 집착할 것인가. 감투 쓰기 싫다고 종적을 감췄던 그 옛날 옛 스님이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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