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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중]

기자명 법보신문

“서정주, 자넨 아무래도 중 되긴 틀렸네”

“서정주, 자넨 아무래도 중 되긴 틀렸네”

1930년대, 박한영 스님은 조선불교계의 가장 높은 어른이신 교정(敎正)을 맡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종정(宗正)스님이신 셈이었다. 또한 한영스님은 대원불교강원 강주스님이셨고 지금의 동국대학교 전신(前身)인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을 맡고 있었다.
한영스님은 당신이 대원불교강원에서 가르친 젊은이들 가운데 학업을 계속시킬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사진설명>한영 스님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던 사람 중에는 서정주, 신석정, 조지훈, 이광수, 청담, 운허 스님 등이 있다.

제자들의 일자리 구해준 스님

그런데 문제는 가난한 제자들의 학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 이 당시만 해도 학생이 부업을 할 만한 업소도 없었거니와 막노동할 자리도 별로 없었다. 한영스님은 생각 끝에 제자 몇 사람을 데리고 효자골 최남선의 도서관 일남각을 찾아갔다.
육당 최남선이 깍듯이 모셔들였다.

<사진설명>'시인 서정주'는 한영 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인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습니까요, 스님?”
“육당에게 복 짓는 기회를 좀 만들어 주려고 그래서 일부러 왔지.”
“어이구 스님, 저를 위해서 일부러 오셨다구요?”
“그래. 자네, 이 아이들 일을 좀 시키고 학비를 좀 대주시게나.”
“일을 시키고 학비를 대 주어라, 그런 말씀이십니까요 스님?”
“그래. 이 아이들 책을 베껴 쓰는 일을 시키면 아주 똑부러지게 잘 할 걸세.”
“아 예 잘 알겠습니다요 스님.”
이 무렵, 육당 최남선의 사설 도서관 일남각에는 귀중한 옛 책을 빌리러 오는 선비들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책을 복사할 수 있는 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책은 일일이 사람 손으로 베껴 쓰는 도리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도서관 일남각에서는 책을 베껴주는 서생이 몇 명 일하고 있었다. 요즘 같으면 아르바이트생인 셈이었다.

책 한 페이지를 철필로 베껴 주면 1전이요, 책 한 페이지를 붓으로 베껴주면 3전을 주었다. 한영스님은 바로 이 아르바이트 일을 제자들에게 구해 주고 그 돈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영스님은 이렇게 제자들의 일자리를 구해 주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러나 일자리 구해주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스님은 또 생각다 못해 쓸만한 젊은이 한명씩을 데리고 직접 후원자를 찾아 나섰다. 한영스님은 이재복 학인을 데리고 종로구 사간동에 있는 법륜사로 대륜 스님을 찾아 갔다.
“아이구, 교정스님께서 어인 일로 여기까지 큰걸음을 하셨습니까?”
“아 이 서울 장안에서 큰 일 한 가지를 부탁하려면 대륜스님 밖에 더 있겠소이까?”
“원 무슨 분에 넘치는 말씀을요. 그래 큰일이시라면?”
“좋은 일에 돈을 좀 쓰십시오.”
“좋은 일이라 하시면…?”
“저 아이, 장차 쓸만한 물건인데 스님께서 학비를 좀 대주셨으면 해서 데려 왔습니다.”
“예? 하,학비 말씀이십니까?”
“우리 불교계에 큰 인물이 될만한 젊은이입니다.”
“알겠습니다. 교정 스님께서 데려 오셨을 적에야 쓸만한 사람이겠지요.”
“도와주시겠습니까?”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교정 스님의 높으신 뜻이신데요…”
이렇게 해서 한영스님은 제자 한 명, 또 한 명을 후원자에게 묶어 주어 학업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에 박한영 스님 문하에서 스님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사람 중에는 대전의 보문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이재복을 비롯해서 시인 서정주, 신석정, 조지훈, 이광수, 오장환, 김달진, 청담, 운허, 서경보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수두룩했다.
박한영 스님의 문하에서 공부했던 수많은 젊은이들 가운데서 유독 스님이 관심을 많이 가졌던 인물이 바로 서정주. 가출 청년이었던 서정주는 당시 톨스토이에 흠뻑 빠져 있던 ‘톨스토이 주의자’였다. 그래서 한영스님은 서정주의 별명을 ‘똘스또이 청년’이라 불렀다.

“인재 하나 맡아서 키우시오”

그런데 이 서정주는 당시 대원불교강원에서 불교공부를 하면서도 톨스토이이에 심취한 문학청년이라 스님 모르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서정주는 대원암 뒤꼍에서 숨어서 담배를 피우다 한영 스님께 들키고 말았다.
“여보게, 육당 최남선은 공부하기 위해 피우던 담배를 애써 끊었다네.”
그러나 그 후로도 서정주는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고 숨어서 피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영 스님이 서정주를 불렀다.
“서정주, 자네는 불경 공부보다는 차라리 이런 책을 읽어보게나.”
그러면서 미리 준비한 두보의 시집과 이백의 시집을 서정주에게 주었다.
“아 아닙니다 스님. 불경공부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서정주는 스님께 죄송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한영스님은 가만히 고개를 좌우로 흔드시며 말씀했다.
“서정주 자넨 아무래도 중 되긴 틀린 사람 같고, 아마도 저기 저 하늘가를 훨 훨 날아다니는 황새 같은 그런 시인이나 될 사람이야.”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한마디 덧붙이셨다.
“그렇다고 황새처럼 그름처럼 두둥실 떠돌기만 해서는 시인이 되는 게 아닐세. 『능엄경』도 읽고, 『화엄경』도 읽고, 『선문염송』도 배우고, 『장자』도 보고, 제자백가도 접하고 이백도 만나고, 두보도 통달해야 시인다운 시인이 되는 게야. 자네 알겠는가?”
“예 스님, 명심하겠습니다.”
이 때 서정주는 크게 뉘우쳤고 크게 다짐했고, 그래서 결국 훗날 저 하늘가를 훨훨 날아다니는 황새 같은 그런 시인이 되었다.
한영 시님이 예견했던 대로, 그리고 한영 스님이 깨우쳐 준 그대로, 서정주는 기어이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시인 서정주’가 된 것은 대원암과 대원불교강원, 그리고 바로 거기에 저 크나큰 스승 박한영 큰스님이 계셨던 덕분이라고 늘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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