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사원의 대중공양
미얀마 사원의 대중공양
  • 법보신문
  • 승인 2004.07.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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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광 스님
동국대 불교대학원 원장



지난 6월 말경에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경영자최고위과정의 해외세미나 일환으로 미얀마를 다녀왔다. 지난 겨울 대학원생들과 함께 미얀마 국립양곤승가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곳 아가마타판티타 학장 스님께서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듣고 동국대학교에서 50대를 기증했다. 양 교의 세미나도 하면서 성지순례를 겸해 30여명의 사부대중이 동행했다. 양곤의 쉬웨다곤 파고다와 바간의 마하누 사원 등 2500기의 불탑 참배와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황금대불의 새벽예불 및 혜호 인레호수의 수상생활 등을 돌아보았다. 필자로서는 세 번째의 방문이었지만, 갈 때마다 새롭고 감동적이었다. 세 번째가 되니 이제야 감이 조금 잡히는 것 같다.

이번 성지순례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만달레이 공항 근교 아미라푸라 지역의 마하간다욘 수도원(大香寺)에서 행했던 대중공양이었다. 이 곳은 부처님 당시와 같이 항상 1250여명의 대중이 함께 수행하고 있는 사원이다. 이 사원은 한국불교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여기서 근대 율맥을 계승한 자운(慈雲) 큰스님께서 수계해 남방 율맥을 전수해온 곳이기도 하다. 공양준비는 사전에 연락이 됐으므로 그 곳 신도들이 장만해 두어서 별 무리 없이 대중공양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우리 일행은 9시 30분 경에 도착해 ‘우 인도와사’ 주지스님의 안내로 대중공양 처소에 갔다. 10시에 대중공양종이 울리자 여기 저기서 대중이 몰려나왔다. 모두가 맨발로 가사를 수하고, 바루를 들고 나오는 모습은 그대로 장관이었다.

두 줄로 수 백 미터나 늘어 선 수행자들은 조금의 옆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으며, 행선(行禪)의 자세로 느린 파도처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대중들의 서열은 수계의 순서에 따라서 서게되며, 나이로는 90세가 넘어 보이는 노승에서부터 아직 10살도 채 되지 않은 사미승도 함께 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이지만 장난기라고는 보이지 않은 근엄한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우리 일행 중 스님들은 주지스님의 안내로 대중공양의 공덕을 찬양하고 증명을 했으며, 재가자들은 스님들에게 직접 공양을 올렸다. 바루에 공양과 차담 등을 받은 스님들은 큰 식당에 앉아 보시한 단월을 위해 기도와 찬탄의 축원을 염송한 후 공양을 들었다. 1250여명의 대중이 공양했지만, 조금의 소리도 나지 않았으며, 1시간만에 모든 공양은 끝나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부처님 재세시에도 이와 같았을까 할 정도로 감격스러운 장면이었으며, 장엄한 의식이었다. 삼보에 올리는 공양은 최상의 보시이며, 무량의 공덕이다. 대중공양을 받는 스님들은 그대로가 수행의 일환이었고, 복전(福田)이므로 당당하고 근엄했다. 어린 사미에서 노승에 이르기까지 평등공양을 받으며, 삼의일발(三衣一鉢)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매일이라도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대중공양의식은 우리들에게 환희심을 돈발시켰다.

이와 같은 대중공양의식에 대해 일본의 도원(道元)선사는 『정법안장(正法眼藏)』에서 송나라 총림의 선원에서 행해졌던 것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선원에서도 대중공양이 들어오면 점심공양 때 보시자가 선원에 들어가서 스님들에게 직접 올리고 스님들은 보시자를 위해 독경과 축원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대중공양의식은 선원에 대한 신앙의식의 일부분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 전국의 선원에서는 하안거를 맞이해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이 많다. 이러한 스님들에게 결제에 들어가지 못한 스님들이나 신도들은 선원에 대중공양이라도 올려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도 대중공양의식을 정착시켜 의례화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bkha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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