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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의 생각

기자명 법보신문
일 진 스님
운문사 강원 학감


해마다 연중행사처럼 치르어야 하는 금수강산 대한민국의 장마철을 올해도 어김없이 맞이했다. 더욱이 올해 여름장마는 집중호우라는 소식이 있어 무엇보다도 상습 물난리 지역주민들의 여름나기가 여간 염려 되는게 아니다.

내가 살고있는 호거산 운문사의 개울, 개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계곡에 물이 줄어들면 비가 내려서 계곡을 채워주고 넘치게 되면 날이 개어 어느 때 그랬느냐는 듯 맑은 물이 적당하게 흘러가며 스스로 조절한다.

가물어서 계곡 물이 다 말랐다고 애태우며 걱정했던 때가 어제였는데 어느 사이 무서운 노도(怒濤)와 같은 흙탕물을 쏟아 부어 극락교 까지 넘칠 듯한 산중 계곡 물의 위력에 한바탕 걱정을 하게된다.

애를 태우고 걱정을 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 일뿐 계곡의 모습은 여전히 넘치고 마르는 일을 스스로 적당히 조절하며 년년히 지내오고 있다. 이것은 아마 자연(自然)이 지니고 있는 위대한 질서이고 리듬일 것이다. 이와 같은 조화와 질서는 우리들의 삶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재물(財物), 명예(名譽), 수명(壽命) 등도 사실은 자연의 원리대로 자기 몫만큼 지니게 되어 있다. 그 이상 자기의 분수에 넘치도록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과욕(過慾)이다. 과욕은 반드시 고통을 초래하게 된다.

요즈음 툭 하면 불거져 나오는 신용불량 문제도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질서를 무시 한데서 온 결과이다. 그것이 하필 재물 문제뿐이겠는가?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좀더 그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는가 하면 좀더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며 더 살려보려고 호흡기 등을 꽂아가며 수명을 억지로 연장하려는 행위들도 사실은 모두 자연의 질서를 위반하는 인간의 지나친 집착과 욕심에서 일어난 현상들이다.

그래서 인간의 고통은 집착을 원인으로 해서 생겨나는 것이고 고통을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은 집착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고금(古今)의 스승님들은 가르치신다.

장마가 오기 직전 캐야 하는 감자는 그 밑뿌리에 주절이 달린 토실토실한 감자도 감자려니와 바다만큼이나 넓디넓은 감자밭에 연한 보랏빛, 하얀빛의 감자 꽃들이 올망졸망 노오란 꽃술을 머금고 그다지 크지도 않은 귀여운 송이의 꽃들 또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중의 하나다.

풍성하고 넉넉한 잎새들로 숲을 이룬 사이사이로 샛노란 꽃이 환하고 건강하게 피어있는 호박꽃, 장마철 어쩌다 하루 반짝 들었던 햇빛이 잦아질 무렵에 피어나는 하이얀 색의 박꽃 그리고 달맞이 꽃, 이 모든 꽃들은 필자가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그리고 지금도 해질 녘 포행 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은 꽃이며 향기들이다.

그러나 지루한 장마철의 일상들이 그저 그런 일들로 몸도 마음도 시들하게 게을러져 매사를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때이기도 하다.

같은 내용의 경전이나 일반적인 책도 그것을 읽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느낌이 아주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물론 더 큰 비중을 갖게 된다.

올해의 여름에 어김없이 맞이하고 있는 장마철. 그것은 결코 지루하거나 느슨해지고 타성에 젖어 버리는 시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결코 화려하고 짙은 향기를 머금지는 않았을 지라도 건강하고 당당하게 작으면 작은 대로 자신의 향기를 은은히 지니면서 자연의 질서에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은 꽃송이까지도 볼 수 있기를, 같은 내용의 책이 있지만 이 여름장마철에 읽은 그 한 말씀이 특별한 감동으로 닦아온 충만 된 장마철이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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