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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살 절망의 끝에서 만난 절[br] 장애 딛고 마음의 눈 뜨게 했죠"

기자명 이재형

천만배 절수행 한 경 혜 씨

“부처님, 전생의 업보를 이생에서의 내 목숨을 걸고 당당하게 도전합니다. 운명이라는 것에 맞서서 도전합니다. 만약 실패하면 나는 내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1996년 2월 1일, 한경혜(30) 씨는 1만배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일곱 살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천배를 해 온 그에게도 매일 1만배씩 백일동안 한다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할 수 없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절을 잘하는 사람이 108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보통 10~12분, 조금도 쉬지 않고 그 속도를 계속 유지해 절을 해도 1만배를 하기 위해서는 약 17시간이 소요된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닌 100일간을…. 한 씨는 절수행의 극한점이라는 1만배 백일기도를 마친다면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껍질이 번데기처럼 벗겨질지도, 그리하여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손으로 새로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바로 선천성 뇌성마비라는 운명에 대한 도전이었고, 자신을 자신의 힘으로 더욱 반듯하게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사진설명>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난 한경혜 씨. 그는 절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의 장애를 극복한 촉망받는 동양화가다.

“산다는 것, 장애라는 것. 부정 아닌 현실에서 간절하게 지푸라기라도 하나 움켜쥐는 심정으로 이 몸을 버릴 각오로 몸부림쳤습니다. 죽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서 나 자신에 대한 회한과 애절함으로….”

성철 스님 지시로 절 시작

1만배는 그야말로 초 단위의 투쟁이었다. 일분일초라도 헛되이 보내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탓이다. 그래서 쉰다는 의미도 다만 절의 속도를 늦추는 것일 따름이다. 한 씨는 한 배 한 배 빠르게 절을 해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악귀가 되어 덤벼들었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여기에 땀띠가 온몸을 뒤덮었고, 잠깐 눈을 붙이는 시간조차 지독한 고통으로 신음을 삼켜야 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듯싶었다. 실제 40여일이 지나면서 한 씨는 수면제를 한 움큼 삼켰다. 포기하는 대신 목숨을 바친다는 애초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죽는 일일까. 그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났고 그 날조차 1만배 절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니 1분1초를 뼈를 깎는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온갖 마장을 극복하며 한 씨는 마침내 100일 기도를 마쳤다. 피보다 진한 눈물이 흘렀다. 한 씨는 깨달았다. 이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또 그토록 원망하고 괴로워했던 장애가 오히려 진정한 축복이었다는 점도 뼈속 깊이 느꼈다. 심한 장애가 있었기에 절에 매달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불연을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만배씩 100일간 수행

절을 마친 그녀는 실크로드를 여행하고 돌아와 다시 두 번째 1만일백일기도에 들어갔다. 만배의 고통을 치가 떨릴 만큼 잘 아는 한 씨였지만 다시 그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은 이번 생에서 진정 윤회를 끝내고 싶었던 까닭이다. 한 씨는 절이 몸의 주인이 되어버린 삶을 마음이 주인이 되는 삶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고통은 첫 번째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때론 코피가 수도꼭지에서 물 쏟아지듯 했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고통이 끝없이 밀려왔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 것은 한 씨의 마음이었다. 고통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고통이 화두처럼 다가왔다. 몸의 괴로움을 대상으로 ‘이뭐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날들이 지나고 회향을 얼마 앞둔 무렵 감정의 변화도, 희망도, 절규도, 포기도 아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때였다. 잠깐 점심을 먹으며 바라본 창 밖. 눈앞에 보이는 산은 분명히 산인데 모든 티끌이 벗겨지고 청정했다. 나라는 아상이 무너지고 사물과 일체가 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어린시절 입적을 얼마 앞둔 성철 스님의 눈에서 보았던 신비스런 세계와 동일했다. 마침내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너무나 새로운 세계를 직접 체험한 것이다. 한 씨는 1만배백일 기도를 회향하며 절수행의 세계로 이끌어준 성철 스님과 늘 지켜주고 도와 준 어머니에게 감사의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또 다시 세 번 째 만배백일 기도. 절은 화두가 됐고, 화두는 다시 그를 무분별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추호의 의심도 없는 영원한 무대를 보게 된 것이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난 한 씨. 그가 천배를 시작한 것은 일곱 살 때였다. 어느날 심한 경련과 고열을 앓은 뒤 음식은 물론 물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서 담당의사는 한 씨의 어머니에게 “며칠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 같이 죽자 경혜야. 하지만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절이나 실컷 하고 죽자. 그리고 다음 세상에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해인사 백련암에 올랐다. 그는 나무토막 같은 몸을 간신히 움직여 밤새 삼천배를 올렸다. 그리고 이 때 만난 분이 바로 성철 스님. 한 씨는 스님의 지시대로 죽는 날까지 매일 천배씩 할 것을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절은 그녀의 인생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아플 때나 시험 때에도 1000배를 하겠다는 성철 스님과의 약속은 변함없었다. 불편한 몸으로 1000배를 하기 위해서는 학교 갔다 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절에 매달려야 했다. 단지 걷는 게 이상하다는 이유로 동네 꼬마들의 돌팔매에 맞아 피를 철철 흘렸던 기억, 학교 친구들로부터의 끊임없는 따돌림 등. 어쩌면 그는 절을 할 때의 고통으로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극복했는지도 모른다.

5545미터의 히말라야도 등반

“절을 한 후에 비로소 물과 음식을 마실 수 있었으니 절이 나를 살린 셈입니다. 그러나 절이 내게 준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생명만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보게 해주었고, 이 세상을 바르게 보게 해 주었고,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게 해 주었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준 것입니다.”

1년, 2년 계속된 절은 기적을 가져왔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몸이 나아졌을 뿐 아니라 가물가물하던 기억도 중학생이 되며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늘 꼴찌였던 그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상위권에 올랐다. 또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준비한 대입검정고시도 불과 석 달 만에 모든 과목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한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미술을 계속하기로 결심하고 미대진학을 시도했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곤 했다. 한 씨는 전공을 달리하면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고, 결국 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상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후 홍익대 미술대학원의 진학과 함께 잇따른 2번의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과 5번의 입선. 특히 산악인도 어렵다는 5545미터의 히말라야 칼라파타르 정상에 우뚝 서 세상을 깜짝놀라게 했다.
“부처님은 업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에게 참다운 자유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불교는 운명에 순응하는 종교가 절대 아닙니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종교입니다.”

“가장 괴로운 시간도 절이고 가장 행복한 시간도 절”이라는 한 씨. 그는 현재 경남 진영의 ‘작가의 집’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지도하기도 하고, 또 입고 먹을 것을 아낀 돈으로 적금을 들어 노숙자들을 돕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신의 절수행 얘기를 담은 『오체투지』를 펴냈다.
지금까지 천만배 가량 절을 하며 몸과 마음의 자유를 찾은 한경혜 씨. 어쩌면 그녀는 150만 장애인들뿐 아니라 고통의 바다에게 헤매고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참다운 ‘도전’과 ‘희망’을 보여준 보살일런지도 모른다.

<사진설명>한 씨의 절수행 체험이 담긴 『오체투지』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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