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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원 無上寺

기자명 채한기

계룡산 맑은 바람에
碧眼납자 이마 땀 씻기우고…

지금, 조계종 80여 선원에서는 2,500여명의 수행 납자들이 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無常)을 체득하며 은산철벽을 뚫으려 하는 납자들의 눈망울은 부처님이 보셨던 새벽별 만큼이나 초롱하다.

간화선 세계 전파 중심도량

2000년 3월 계룡산 국사봉 자락에 자태를 나툰 국제선원 무상사에도 눈푸른 납자 12명이 재가 수행자 13명과 함께 좌복 위에 앉아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선을 세계에 전파시켜 보려는 벽안의 스님들이기에 참선도량에서 느껴지는 기운 또한 남달리 느껴졌다.

<사진설명>저녁 7시 30분 방선 죽비소리가 났다. 곧 문이 열리더니 수행자들이 천천히 나와 회랑을 돌았다. 깊은 호흡속에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천천히 포행을 하고 있다.

벌써 다섯해째 하안거를 무상사는 맞이했다. 한국 전통 선수행도량과 비교한다면 그 연륜이야 미천하다 하지만 세계의 수행자들이 찾는 도량임을 상기해 보면 그 세월이 너무도 소중하기만 하다. 한국의 전통선이 세계 최고의 수행법이라 자부하지만 간화선 전파를 위한 노력을 우리는 얼마나 했는가 자문하면 고개가 떨구어진다.

무상사는 해외포교에 한획을 그은 숭산행원 스님과 제자들이 원력을 모아 마련됐다. 세계의 수행자들을 향한 선문을 활짝 연 후 대중방이 들어섰고 세 번째로 대웅전이 들어섰다. 우리나라 수행자 보다는 외국인을 위한 선도량이라는 의미가 배인 불사 진행이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상사는 수행에 있어서만큼은 승속을 나누지 않겠다는 의미로 개원 초기부터 승재가 수행자 모두 한 방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독특한 풍토를 조성했다. 우리나라 도량에서 이러한 풍경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사실 수행 정도에 따라 수행공간을 달리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좀 어긋나 있는 듯 하지만 무상사가 보다 대중들 곁에 다가가려 하는 도량이고, 한국내 수행자 보다는 외국 수행자를 향한 선문이란 점을 감안하면 납득이 간다.

그러나 입방 자격만큼은 어느 도량못지 않게 엄격하다.
안거 기간 중 스님은 3개월 이상 머물러야 입방을 허락하며 재가불자 역시 최소한 1주일 이상을 머물러야 좌복 위에 앉을 수 있다. 재가 불자들의 단순한 산사체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이 도량을 찾는 사람들은 산사 정취의 맛을 느끼기보다는 잠시라도 수행의 맛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 혹은 외국 전문수행자들이다.

승속 구별없이 한 공간서 정진

현재 무상사에는 스님 12명과 재가수행자 13명이 머물며 정진하고 있다. 스님 12명 중 한국 비구니 2명 외에는 모두 외국에서 온 수행자다. 6명의 비구 스님은 미국에서 온 스님 3명을 비롯해 싱가폴, 체코, 일본에서 온 수행자다. 4명의 비구니 스님은 폴란드(2명)와 말레이시아, 싱가폴에서 온 눈푸른 납자들이다. 모두들 이번 안거를 마칠 때까지 이 도량에 머문다. 재가 수행자 13명도 대부분 일본, 미국,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의 참선을 체험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수행자들이다.

모든 수행자는 묵언 속에 하안거 일과표에 따라 정진하고 있다. 무상사의 독특한 점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에 걸쳐 선문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선문답은 미국인으로서 숭산 스님의 제자가 된 현 주지 무심 스님이 맡아 진행하고 있다.

“수행 정도에 따라 지도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처음 선수행에 입문한 분에게 공안을 던질 수는 없습니다. 좌선하는 법은 물론 호흡하는 법도 세심하게 가르칩니다. 재가수행자 분들 중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있는 분도 있어 공안을 던져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무심 스님은 선문답을 진행하면서도 함께 공부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한다. “저도 정진하는 수행자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스님들이 갑자기 저에게 법거량을 해올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누가 가르치고 누가 가르침을 받는다는 개념보다는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나 함께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한다는 마음자세로 수행에 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어떤 화두를 짓고 있느냐고 묻자 무심 스님은 “이뭐꼬”를 들고 있다고 귀뜸해 주었다. 외국인들 역시 이 화두를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우리 한국선의 대표 공안은 ‘이뭐꼬’인 듯 하다.

산사의 찬 공기가 흐르는 새벽 3시에 일어나 108배와 아침예불, 참선으로 시작해 아침공양을 한 후 울력을 한다. 그리고는 다시 참선. 점심공양과 참선을 한 후 다시 저녁 공양. 또 다시 참선을 한 후 9시20분이 되어서야 취침에 든다. 이 때 취침을 뒤로하고 수행을 계속하는 것은 허락된다. 외국인 스님들이 혹 수행 기간 중에 ‘향수병에 걸릴 경우는 없냐’는 우문을 던지자 무심 스님은 “태어난 고향이 아닌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병(?)에 단단히 걸려 있다”며 웃어넘긴다.


<사진설명>무상사는 2000년 3월 세계 수행자들을 향한 선문을 활짝 열었다.

매주 선문답·선법문 지도

수행자들이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수요일 오후 1시 30분. 법문이 있는 시간이다.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을 비롯해 덕망 있는 스님들이나 고참 수행자들이 법석에 올라 선법문을 한다.

“법문 시간이라고 해서 마음을 놓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이 시간이 더 귀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의 요체는 물론 수행자의 마음자세를 일러주는 시간이기에 더욱 집중해 귀를 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하루, 어느 한 시간, 아니 한 촌음도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화두와 함께한 순간 순간일 뿐이다. 이제 해제일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룰 선문이기에 무상사(無上寺)라 했을 터. 해제일 안에 눈푸른 스님들에게 오도기연이 닿기를 기대한다.

계룡=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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