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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죽음은 무엇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죽음 한마디로 규정 어려워

죽음을 한 마디로 규정지울 수 있을까. 죽음을 간단하게 규정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죽음을 직접 체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보더라도 사후세계를 간단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죽음을 체험하고 다시 삶의 세계로 되돌아온 사람은 단지 자기가 겪은 체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죽은 이후 겪는 경험도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또한 사후세계에는 다양한 종교가 개입될 수밖에 없으므로, 문제는 더 한층 복잡해진다.

죽음 대신 삶에로 초점을 옮겨보면, 우리는 지금 살고 있으니까 삶에 대해 무언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답을 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혹은 자기 자신이 삶을 A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 말에 다른 사람이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한 사람도 그 말에 긍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삶을 한 마디로 규정하는 일 자체가 가능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설사 그렇게 규정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동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한 목소리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이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식의 의미규정 자체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삶의 경우가 이러하다면, 죽음의 경우 두 말할 나위조차 없지 않을까. 더구나 삶과 죽음은 따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지 않은가.

현대 물리학에 불확정성원리가 있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관찰하는 사람에 관계없이 관찰내용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관찰내용은 관찰대상과 관찰자의 관계 아래 형성된다는 과학법칙이다. 다시 말해 관찰자에 따라 관찰내용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미시세계에서 소립자는 파동인지 입자인지 미리 확정되어 있지 않고, 관찰자와의 관계에 따라 파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입자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

불확정성원리는 미시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원리는 아니고 거시세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통용되는 법칙이다. 불확정성 원리를 죽음이란 현상에 적용해보면 죽음은 두려운 현상으로 불확정,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에 입각해 보더라도, 죽음이해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맥락에서 임종환자가 다양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굳이 불확정성 원리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죽음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현상을 감안해본다면, 죽음이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 ‘카르마의 비전’이란 말이 있다. 비슷한 카르마를 지닌 존재가 주변 세계에 대해 공유하는 일련의 지각방식이 바로 카르마의 비전이다.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공통된 카르마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똑같이 인간으로 불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을 아귀는 피로, 물고기는 집으로, 천상의 존재는 유리로, 인간은 물로, 이렇게 존재유형에 따라 4가지로 서로 다르게 보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 바로 카르마의 비전의 실례이다.

그러나 똑같은 인간이라 해도 사람마다 각자 고유한 카르마 역시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들은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죽음을 볼 적에도,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것은 ‘인간존재에 공통된 카르마의 비전’, ‘각자에게 고유한 카르마의 비전’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만능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 죽음에 대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믿는다’ 고 말한다면, 너무 교만한 태도가 아닐까. 벌레 한 마리가 손가락 하나를 세상 전체라고 보는 것처럼, 카르마의 비전에 의해 보여지는 것만 볼 뿐인 우리가 어떻게 감히 카르마의 비전 너머에 무엇이 있느니 없느니, 혹은 죽음을 한 마디로 단정해 말할 수 있겠는가.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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