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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죽음은 공포의 대상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삶의 패배가 아닌 승리의 시간

“예전부터 자살에 관해 나는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한두 번쯤 자살을 생각해본 적도 있다. 다른 사람과 관계가 없는 독립된 존재였다면, 아마 자살을 했을 것이다. 허무주의자의 자살,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허무, 이 세상에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여대생 김양)

허무하니까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김양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 속 주인공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대목을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굳이 애써 살려고 할 필요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게 아닌지, 자기 멋대로 자살해도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에 직면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무자비한 힘과의 전쟁을 뜻한다. 죽음은 절망 그 자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의 포기’ 패배의 인정, 그리고 절망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죽음을 무찔러야만 하는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허무하다 하여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거나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어떻게 해서든지 삶의 시간만 연장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이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룩진 표정으로 숨을 멈추게 되어 남아있는 가족에게 안타까움만 남길 뿐이다. 우리가 죽음을 계속해서 피하려고만 하거나 죽음을 적으로만 간주한다면,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이 한층 고양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왜냐하면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건강한 죽음뿐만 아니라 건강한 삶 역시 불가능하게 된다.

죽음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 삶의 과정, 혹은 삶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적은 죽음이라기보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무지이다. 죽음은 두려운 현상으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죽음을 두렵게 생각해 그렇게 굳어지게 되는 것 일뿐이다. 누구나 두려워한다면 죽음은 무서운 현상으로 확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죽어가는 현상을 감안해 보더라도, 죽음은 두려운 현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죽음의 수용은 결코 삶의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 죽음의 수용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삶의 포기가 아니라 삶을 보다 의미있게, 죽음을 보다 인간답고 품위있게 맞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다. 죽음 수용을 통해 비로소 시작되는 죽음 준비는 바로 삶의 준비이기 때문이다. 삶의 포기와 죽음의 수용을 혼동해서는 안되고 죽음을 바르게 보는 지혜가 요구된다. 죽음에 대한 무지, 오해 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는 정견을 갖추고 있지 못하니까, 다양한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7가지 반응 중 첫째 두려움, 둘째 부정, 셋째 분노 역시 이런 무지로부터 야기된다.

만일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 지금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을 통해, 죽는 그 순간에, 그리고 죽은 이후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바로 지금 이 삶에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지금의 삶과 앞으로 다가올 삶은 황폐해지고 우리는 삶을 온전하게, 충분히 살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죽어야만 하는 자기 자신의 바로 그 상태에 갖혀 버리게 된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우리는 끝없는 환상의 나락, 생사의 끝없는 순환, 붓다가 윤회라고 일컬은 고통의 바다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희망 혹은 절망, 어느 쪽으로든 볼 수 있듯이, 죽음 역시 희망 혹은 절망 어느 쪽으로든 될 수 있다. 삶과 죽음을 희망 혹은 절망 어느 쪽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여 제대로 준비한다면 삶과 죽음 모두에 커다란 희망이 아직 남아있다. 죽음을 준비하고 수행을 닦은 사람에게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취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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