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염불암과 박종훈

기자명 법보신문

친구의 여자친구와 찾았던 곳

염불암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약을 털어 넣었다.
모두 안녕. 그리고 세상과 등지는 잠을 청했다.
목탁 소리와 함께 염불 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린다.
아! 이제 내가 극락에 왔구나 생각하며 눈을 살그머니
떠보니 법당이었다.


친구의 여자친구와 찾았던 곳약을 사들고 차창 바깥 풍경을 꼭꼭 짚어가며 눈으로 사진을 박아 놓았다. 마지막 세상을 선명하게 내 눈 속에 넣어두려고… 어두컴컴한 저녁 안양역에서 하차해 염불암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드러누웠다. 그 바위는 내가 사랑했던 그녀가 앉아서 ‘사랑이 메아리 칠 때’를 불렀던 곳이다. 그녀는 내 친구의 여자였다. 나는 그녀를 무척 좋아했다. 지금도…

그날 나는 염불암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약을 털어 넣었다. 모두 안녕. 그리고 세상과 등지는 잠을 청했다.

목탁 소리와 함께 염불 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린다. 아! 이제 내가 극락에 왔구나 생각하며 눈을 살그머니 떠본다. 극락이라고 생각한 그곳은 극락도 지옥도 아닌 염불암 법당이었다. 내 눈앞에서 한 스님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내가 죽지 않은 것이다.

때 마침 법당을 향해 지나던 스님이 쓰러져있는 나를 들쳐 업고 법당으로 옮기셨단다. 그리고 나를 앞에 두고 불공을 드리고 계시는 것이었다. 아마 그 스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또 한번 염불암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감사의 표현을 못다 하고 염불암을 뒤로 한 것이 삼십 수년이 지난 지금,나는 스님께 감사의 말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물론 감사와 미안함이 늘상 자리하고 있지만 그 스님은 그때의 나를 기억이나 하고 계실까?

세상사가 다 그러하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세상의 어느 누구 보다 헤쳐 나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요즘따라 자살 소식이 뉴스에서 자주 보도되곤 한다. 죽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있다. 만두사건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며 투신한 그가 안타까우며, 대통령의 형에게 돈을 건네고 문제가 되자 투신한 이가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요즘 철학을 한다. 어떤 때는 해답이 명쾌하게 나올 때도 있지만 대개가 수수께끼로 남는 수가 더 많다. 죽음의 문제도 그러하다.

잔디밭을 밟고 식당으로 가는 오솔길이 생기면 그곳을 길로 만들어 주듯이.
죽음, 그것은 누구도 헤어날 수 없는 자연이다. 다만 그 자연을 맞이하는 경우에 자연스럽게 자연을 따르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

억지로 죽지 말자. 그때 염불암 언덕의 바위에 다소곳이 앉아 ‘사랑이 메아리 칠 때’를 부르던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죽었을까 살아 있을까?

내가 살아 있으니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다시 한번 안양 염불암에 가서 그때의 추억을 기억해보고 싶다. 스님과 맛 좋은 녹차 한잔 마시면서 말이다. 사는 건 좋은 것인가 보다.

박종훈 ( 단국대학교 도예학과 교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