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죽는다
“당신이 죽은 이후, 모든 것이 살아있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진행될 것이다. 당신이 지금 그런 것처럼 똑같은 의식을 지니게 된다. 바로 지금 당신이 행하듯이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의식이 육신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지속되는 것인지 물었다. 린포체의 답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신의 의식만 지속되는 게 아니라, 죽음 이후 당신의 습관마저도 지속된다.” 린포체의 이런 메시지를 듣고 있던 그녀는“안돼, 내 습관은 아니야” 라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때때로 ‘죽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한다. 달라이 라마에 따르면 죽음은 육신이란 낡은 옷을 벗는 행위라고 한다. 육신만 죽는 것일 뿐이고 그 옷을 입었던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뜻. 따라서 죽은 후에도 지금 우리의 마음상태 그대로,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육신이란 옷만 벗는 것일 뿐. 우리의 습관적 사유패턴은 그대로 유지된다.
우리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면, 이러한 습관은 쉽게 유발되고 더 한층 증진되고 계속 반복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은 지속적으로 반복됨으로써 서서히, 점점 더 견고하게 우리 안에 자리 잡을 것이고, 심지어 잠잘 때에도 계속해서 그 힘을 키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삶과 죽음은 결정되는 것이다.
죽은 이후 바뀌는 건 별로 없으므로, 누구든지 그 마음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든지 그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죽기 마련이다. 따라서 조용하게 혼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것은, 자신이 삶을 영위했던 방식이라고 달라이 라마는 지적했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위하면 할수록,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덜 후회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곧 삶의 거울이다.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삶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순간에, 죽음의 이후에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까닭으로 바로, 지금 이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마음의 흐름을 정화하고 우리 자신과 그 성격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죽음의 순간에, 죽음 이후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죽음에 직면해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 하는 사실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이 눈앞에서 다시 재현되었다고 증언하면서, 다음의 질문에 맞닥뜨렸다. “당신은 자신의 삶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좋든 싫든 죽는 그 순간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은 다시 어떻게 사느냐 라는 물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기보다 지금 나의 삶은 어떠한지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죽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준비는 삶을 준비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죽음준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삶을 준비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것이므로, 삶을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죽음준비, 즉 삶을 준비하지 않고서 산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만 생각했는데, 이런 질문은 세속적인 삶에만 골몰하게 하고 죽음문제를 도외시하게 한다. 그러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죽음준비가 곧 삶의 준비를 뜻하므로, 삶과 죽음의 방식을 동시에 묻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삶의 질과 죽음의 질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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