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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죽은 뒤 바뀌는 건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누구나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죽는다

몇 년 전 티베트의 종살 켄체 린포체(20세기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잠양 켄체 린포체의 환생자)가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어느 여성을 만난 일이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여성을 향해 린포체는 한 사람의 의식이 육체를 떠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순간에서부터 그가 다시 생명을 얻을 때까지 사이에 걸쳐있는 ‘생성의 바르도‘ 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신이 죽은 이후, 모든 것이 살아있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진행될 것이다. 당신이 지금 그런 것처럼 똑같은 의식을 지니게 된다. 바로 지금 당신이 행하듯이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의식이 육신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지속되는 것인지 물었다. 린포체의 답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신의 의식만 지속되는 게 아니라, 죽음 이후 당신의 습관마저도 지속된다.” 린포체의 이런 메시지를 듣고 있던 그녀는“안돼, 내 습관은 아니야” 라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때때로 ‘죽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한다. 달라이 라마에 따르면 죽음은 육신이란 낡은 옷을 벗는 행위라고 한다. 육신만 죽는 것일 뿐이고 그 옷을 입었던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뜻. 따라서 죽은 후에도 지금 우리의 마음상태 그대로,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육신이란 옷만 벗는 것일 뿐. 우리의 습관적 사유패턴은 그대로 유지된다.

우리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면, 이러한 습관은 쉽게 유발되고 더 한층 증진되고 계속 반복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은 지속적으로 반복됨으로써 서서히, 점점 더 견고하게 우리 안에 자리 잡을 것이고, 심지어 잠잘 때에도 계속해서 그 힘을 키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삶과 죽음은 결정되는 것이다.

죽은 이후 바뀌는 건 별로 없으므로, 누구든지 그 마음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든지 그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죽기 마련이다. 따라서 조용하게 혼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것은, 자신이 삶을 영위했던 방식이라고 달라이 라마는 지적했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위하면 할수록,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덜 후회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곧 삶의 거울이다.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삶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순간에, 죽음의 이후에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까닭으로 바로, 지금 이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마음의 흐름을 정화하고 우리 자신과 그 성격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죽음의 순간에, 죽음 이후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죽음에 직면해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 하는 사실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이 눈앞에서 다시 재현되었다고 증언하면서, 다음의 질문에 맞닥뜨렸다. “당신은 자신의 삶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좋든 싫든 죽는 그 순간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은 다시 어떻게 사느냐 라는 물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기보다 지금 나의 삶은 어떠한지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죽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준비는 삶을 준비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죽음준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삶을 준비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것이므로, 삶을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죽음준비, 즉 삶을 준비하지 않고서 산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만 생각했는데, 이런 질문은 세속적인 삶에만 골몰하게 하고 죽음문제를 도외시하게 한다. 그러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죽음준비가 곧 삶의 준비를 뜻하므로, 삶과 죽음의 방식을 동시에 묻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삶의 질과 죽음의 질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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