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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저를 불제자의 길로 이끌어 주신 당신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예로부터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내려준 윤기(倫紀)라는 뜻으로 천륜(天倫)이라고들 말한다. 아마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가끔 나와 같은 출가자와 은사 스님과는 어떤 인연이 있어서 은사 상좌의 인연을 맺는지 궁금해진다. 은사 스님이 계시기에 스님으로써 제2의 탄생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니 은사 스님은 낳아 주신 부모만큼이나 소중한 분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나의 은사 스님은 나와는 참 다르시다. 나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조금은 느긋하면서 소심하다 할 정도로 세심한 편에 속하는데 은사 스님은 일의 처리 속도가 박력이 있으시고 모든 일을 크고 대범하게 처리하신다.

나는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은사 스님은 대중들과 어울려서 지내시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나는 성악가의 노래를 즐겨 듣는데 반해 은사 스님은 새벽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축구 경기 관람을 더 즐기신다.

그래도 은사 스님을 옆에서 모신지가 5년이 넘어가니 내가 평소에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 분을 닮아가는 나를 느낀다. 은사 스님이 가지고 계신 불교관이나 세계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세계관이 된 것 같고, 염불기도를 많이 하시니 나도 좌선보다 염불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몇일 전 은사 스님의 두번째 천일기도 회향이 있었다. 이 머나먼 타국땅에 오셔서 예순을 향해 가는 연세에 사찰 주지의 일도 하시면서 천일을 하루같이 기도를 올리신 분은 아마도 내 은사 스님 밖에 안 계실 것 같다. 한국에 계셨으면 천일 기도 중이라도 잠시나마 도반들을 만나 기도하며 느낄 수 있는 적적함을 달랠 수도 있었을 텐데 내 은사 스님은 천일 내내 그러지도 못하셨다.

작년 초봄 독감에 걸리셔 높은 열에 그 크신 목소리가 평소의 5분의 1 밖에 안나와도 은사 스님은 부처님과의 약속이라며 기어코 손에서 목탁을 놓지 않으셨다. 새벽에 다른 대중 스님들보다 먼저 나오셔서 손수 예불을 준비하시고, 지금도 모르는 것이 많다고 하시면서 영어 공부나 종교 관련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다.
한번은 미국 비자문제로 급하게 캐나다를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11시간의 장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손수 운전하셔서 나의 어려움을 직접 해결해 주려고 나선 분 또한 나의 은사 스님이시다.

은사 스님이 농담 삼아 당신 사주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고 해서 상좌도 나 한 명으로 족하다 하시는데 나는 그런 은사 스님에게는 여러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어떤 비구니 스님이 은사 스님은 기도를 많이 하셔서 연세가 드셔도 건강하실 것이라 했는데 정말로 그 비구니 스님 말씀처럼 은사 스님이 잔병 없이 오래 오래 만수무강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상좌가 훌륭해야 은사 스님이 빛난다고 했는데 빛은 못 내드려도 난 은사 스님께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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