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 죽음은 과연 끝일까

기자명 법보신문

예상 밖 사후세계 닥친다면?

55세의 말기 위암 환자 박씨는 전혀 아픈 곳이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았고 그런 상태가 한 달 이상 계속되기에 병원에 갔더니 여러 가지 검사 끝에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하기 위해 막상 열어 보았으나 위 주변의 림프 결절에까지 전이되어 수술도 하지 못하고 그냥 덮어 버렸다고 한다. 그 후 항암 치료를 두 차례 하였으나 별 반응이 없어서 퇴원한 뒤 가정 호스피스에 의뢰되었다. 통증이 심해서 호스피스에 가입한 초기에는 통증 조절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조용한 성품이어서 호스피스 봉사자가 집을 방문할 경우 부인이 주로 병세를 말했다. 부인이 외출하고 없을 적에만 그는 수줍은 표정으로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특별한 종교가 없었던 그는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다. 공자는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다. 유교사상에는 죽음에 대한 가르침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도덕윤리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박씨도 또한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호스피스 봉사자가 물어 보았다. 그는 한숨을 푸욱 쉬면서 “아무런 희망이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어서 우울하고 죽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마음이 답답하다. 정말이지 죽고 싶지 않다. 그러나 몸이 점점 쇠약해지니 이젠 못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겁이 난다.

죽음이란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아니냐. 죽으면 모든 게 정지하고 끝나는 것인데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로부터 며칠 지나서 그는 죽었다. 박씨처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해 죽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례가 적지 않다.

죽으면 끝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 이후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라고 요구한다. 죽음 이후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죽음은 과학적 연구대상이 아니다. 과학은 ‘살아있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의 안목에 의해 형성되어 가고 있는 학문이 아닌가. 따라서 죽음이란 현상을 살아있는 인간의 안목으로 연구하기에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똑같은 이유에서 죽으면 끝이라는 것 역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죽음 문제는 과학적 연구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같은 보이지 않고 측정하기 힘든 영역의 주제에 대한 접근과 이해에 있어서 현재의 과학적 연구방법은 너무나 불완전하다. 그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관점과 접근방법의 필요성을 수용하기보다, 관습적으로 익숙한 개념과 별다른 검증 과정 없이 널리 통용되어오던 이론들을 마치 과학적으로 확증되거나 밝혀진 사실인 양 착각하고 별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안주하는 것은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전문가 집단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태도이다.

기계적 물질문명의 한계로 인해 보이지 않는 영역인 정신세계의 이해와 해결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무기력하다. 현대 과학과 의학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완전하고 부족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무엇이건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자료를 얻어야 하고 그것을 분석해 결론을 내어야 과학적 지식이라고 하기 때문에, 죽음문제처럼 실험과 관찰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영역에서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과학적 자료가 나오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까르마의 비전에 의해 보여지는 것만 볼뿐이므로, 보는 게 서로 같을 수 없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로 각자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에, 죽으면 끝인지 아닌지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다. 죽으면 끝이라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하고 죽은 뒤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새로운 현상을 겪게 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