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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티베트인의 죽음관

기자명 법보신문

편안한 죽음 맞을 수 있는 건
‘죽음이 끝’ 아니란 확신 때문

서양에서 생사학을 창시한 미국의 정신과 의사 퀴블러로스 박사는 지난 8월 24일 미국 애리조나주 스콧데일 자택에서 임종했다. 평소에 “죽음은 휴가를 떠나는 것과 같다”고 말했던 그의 마지막 유언 역시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였다. 그에 따르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의 문제일 뿐이라고 한다. 필자도 죽음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실체로서 인정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실체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여러 인연이 모여 형성된 연기적 존재이듯이, 죽음도 마찬가지로 인연법의 소산일 따름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헌이다. 이 책은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한 안내서이다. 어떤 사람이 죽어갈 때 또는 죽은 이후에 스승이나 주위 사람이 그를 위해 읽어주는 책, 혹은 살아있을 때 죽음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책이다. 티베트인들은 죽은 사람의 시신 옆에서 이 책을 읽어준다. 시신이 없다면 죽은 사람이 쓰던 침대나 의자 옆에서 그의 영혼을 불러, 그 영혼이 옆에서 듣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읽어준다. 티베트인들은 죽어가는 사람 혹은 이미 죽은 사람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서 전제하고 있다.

『티베트 사자의 서』의 원래 제목은『바르도 퇴돌 첸모』 (Bardo Todrol Chenmo)로, “바르도 상태에서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위대한 해탈을 성취한다”(Great Liberation through Hearing in the bardo)는 뜻. 바르도 개념은 티베트인의 생사관에서 매우 중요한 용어이다. ‘바르도’의 ‘바르’ (Bar)는 ‘사이’를 뜻하고 ‘도’(Do)는 ‘매달린’ ‘던져진’을 뜻한다. 하나의 상황의 완성과 다른 상황의 시작 사이에 걸쳐있는 ‘과도기 ’혹은 ‘틈’을 의미한다. 인간은 삶과 죽음 사이에 걸쳐있는 과정적 존재라는 뜻이다.

티베트인들이 일반적으로 죽음과 다시 태어남 사이의 중간 상태를 가르키는 말로 바르도란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바르도라는 용어에는 훨씬 깊고 넓은 의미가 담겨있다. 바르도에는 4가지로 나뉘어 말해지고 있다. 첫째 바로 지금의 삶이라는 일상적인 바르도, 둘째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고통스러운 바르도, 셋째 다르마타(Dharmata)라고 불리는 밝게 빛나는 바르도, 네째 업에 따라 다시 생성되는 바르도.

첫째, ‘바로 지금의 삶이라는 일상적인 바르도‘는 태어난 이후에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기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을 가르킨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르도는 이것 뿐이고 나머지 세가지 바르도는 알지 못한다. 둘째, ‘죽어가는 고통스러운 바르도’는 죽어가는 과정이 시작된 직후부터 ‘내적인 호흡’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이 바르도는 죽음의 순간에 ‘근원적 광명’이라 불리는 마음의 본성이 떠오르면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셋째, ‘다르마타라는 밝게 빛나는 바르도’는 마음의 본성이 밝게 빛을 내기 시작하는 죽음 이후의 모든 경험을 포함한다. ‘밝은 빛’은 소리, 색채, 빛깔을 지닌다. 넷째, ‘업에 따라 다시 생성되는 바르도‘는 우리가 환생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

따라서 바르도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울타리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삶만 알고 있을 뿐 죽어 가는 과정이라든가 죽음 이후에 대해 입을 댈 수 없다. 죽음을 모르면서 삶을 안다는 것이 가능할까. 죽음을 알아야 삶이 온전히 보이지 않을까. 바르도 개념은 바로 지금 이 삶만이 아니라 죽어 가는 과정, 죽음 이후, 다시 태어나는 바르도까지 포함하고 있다. 네 가지 바르도 개념에 비추어볼 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말은 더 이상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확고한 생사관을 갖춘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이 죽음이란 육신의 옷만 벗는 과정에 불과하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티베트인들이 죽음을 편안하게,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도 죽음을 당연히 지나가야 할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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