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자 한 자 쓰다보면 시나브로 삼매”

기자명 법보신문

직지사 사경법회 현장

“물은 대자비로 흐르는 지혜의 물이요, 먹은 깊은 선정의 굳은 먹입니다. 선정의 먹으로 지혜의 물을 갈아서 실상법신의 문자를 옮겨 씁니다.…원컨대 이 공덕으로 저와 더불어 온누리의 모든 중생들이 끝없는 옛부터 지어온 몸과 마음의 허물을 남김없이 소멸시켜 윤회의 바다를 벗어나게 하여지이다.”

<사진설명>직지사는 신라시대부터 사경원이 있었던 사경수행의 본찰이다. 사진은 사경법회에 참석한 불자들.

매주 화요일 사경법회 개최

9월 7일 김천 직지사 천불전. 50여 명의 불자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외우는 ‘사경관념문(寫經觀念文)’이 고요한 산사의 적막을 깨우고 있었다. 이날은 5주 동안 진행되는 사경법회 입재식. 지난해 3월 11일을 첫 시작으로 『현재현겁천불명경』을 각각 5주씩 아홉 번 완료했고, 이번이 그 마지막 사경법회의 첫 번째 날이다. 태풍의 영향 탓으로 바람이 거세고 굵은 빗줄기가 흩날렸지만 김천지역은 물론 서울이나 부산 등 외지에서 온 불자들도 많았다. 주지 자광 스님도 참석해 손수 쓴 법문자료를 나누어주며 사경수행을 주제로 법문했다.

“사경은 육바라밀 수행입니다. 사경 전에 부처님께 정성껏 예불을 올리니 보시고, 사경하는 동안 5계가 지켜지니 지계입니다. 놀고 싶고 성나는 마음 참으니 인욕이고, 한 번 사경 하면 2시간이 가니 정진 아니겠습니까. 또 사경하는 동안 마음이 고요해지니 선정이요, 사경을 함으로써 즐거움이 생기니 지혜라 할 수 있지요. 여기에 부처님 경전을 공부해 다른 분에게 전해줄 수 있으니 전법도생(傳法度生)까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경은 글자를 씀으로써 번뇌를 없애는 탁월한 수행법인 동시에 경전이라는 부처님의 법신사리를 조성하는 거룩한 행위다. 이런 까닭에 경전에서는 사경의 공덕으로 “무수한 세월 동안 물질로 보시한 공덕보다 경전을 사경, 수지 독송하여 다른 이를 위해 해설한 공덕이 수승하다.”(『금강경』), “만약 어떤 사람이 경전을 사경, 수지 해설하면 대원을 성취한다.”(『법화경』)고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화엄경』에서는 “부처님께서는 살갗을 벗겨 종이로 삼고 뼈를 쪼개 붓을 삼고 피를 뽑아 먹물을 삼아서 경전 쓰기를 수미산만큼 하였다”고 할 정도로 사경은 구도와 신심의 극치로 표현돼 왔던 것이다.

황악산 직지사가 이런 사경법회를 시작한 것은 직지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신라시대부터 사경원이 있었고, 경순왕 때에는 천묵 스님이 이곳에서 나라의 복락을 기원하며 금자장경을 사성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그 옛날 직지사는 사경수행의 본산과 같았다. 따라서 사경법회를 다시 여는 것은 신라사경원의 전통을 계승하는 일인 동시에 사경을 오늘날 새로운 불교신행으로 정착시키는 일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 직지사에 ‘사경원’을 건립하기 위한 준비작업이기도 했다.

사경의식 철저히 엄수

이런 뚜렷한 지향 때문인지 ‘직지사의 사경’은 여느 사찰과는 사뭇 다르다. 철저한 사경의식도 그 중의 하나다. 법회시작 전 『천수경』 독송을 시작으로 삼귀의, 사경발원문, 참회문, 십념, 사경관념문 등을 거쳐야 비로소 사경에 들어간다.

또 사경이 끝나면 축원과 반야심경 독송, 사경회향문 낭독, 사홍서원을 마치고 불전에 삼배를 해야 모두 끝난다. 직지사가 이렇게 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의식이란 그저 형식적인 과정이 아니라 신심을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과 같다는 신념 때문이다.

또 하나의 ‘다름’은 경전에 있다. 흔히 『법화경』이나 『금강경』 등을 사경하는 것과 달리 여기에서는 『현재현겁천불명경』을 사경하고 있다. 이름도 생경한 이 경전은 말 그대로 천명의 부처님 명호가 담긴 경전이다.

“천 분의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천 분의 부처님이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을 제도해주시기를 기원하는 중생들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이기도 하고요.”(교무국장 무심 스님)

절-염불하며 사경

사경법회에 참가한 불자들은 이렇게 천 분의 부처님 명호를 붓이나 붓펜으로 한 글자 한글 자 아로새겨나간다. 그리고 한 분의 부처님을 쓸 때마다 절을 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항간에서는 사경을 하며 절을 하면 글을 정성껏 쓸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곳에서 사경을 지도하는 스님들의 생각은 다르다. 입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몸으로는 절을 하며 손으로 사경하는 일이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나중에는 잡념 없이 사경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경은 정성이 ‘으뜸’이고, 그에 대한 간절한 표현이 절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법회, 시간이 흐를수록 불자들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지만 표정만은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시작했지만 이제는 부처님 한 분 한 분 부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그 무엇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경을 좀 더 잘하려고 붓글씨 공부도 시작했어요.”(이귀희·48·혜향심)
“집안에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 사경을 하면서 일이 술술 풀리네요. 아마도 사경으로 인해 제 마음이 밝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르죠.”(이선희·68·불국심)
“나이가 먹으면서 눈이 많이 침침했어요. 그런데 사경을 시작하면서 이제 돋보기 없이도 다시 글을 읽을 수 있게 됐어요. 사경은 제 몸과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유명영·75·월성)
“사경을 하면서 느끼는 환희심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겠어요. 직접 사경을 해보면 마음이 편안해짐과 든든한 ‘부처님 빽’이 생긴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거예요.”(이향순·54·만월심)

직지사는 지난해 3월부터 이어온 사경법회 회향식을 10월 26일 천불전에서 개최한다. 지금까지 사경했던 경전들을 불로 태우는 소지의식을 성대하게 열며, 이중 일부는 직지사 박물관에 보관할 예정이다. 직지사는 또 회향식을 마친 후 사경법회 및 사경원 건립 추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갖는다는 계획이다.

사경원 건립 구상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찬란하게 피어났던 사경수행과 그 문화. 조선조 500년 억불숭유의 긴 터널을 지나며 주춤했던 사경이 최근 불자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수행법으로 확산되고 있다. 직지사 사경법회와 사경원 건립 추진은 이러한 사경수행이 한 때 ‘유행’에 그치지 않고 불자들 삶에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천=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 무심 스님이 말하는 올바른 사경 절차

“정성이 사경의 시작과 끝”

직지사 사경법회를 지도하고 있는 교무국장 무심 스님은 “사경의 시작과 끝은 정성”이라고 말한다. 사경을 할 때 글을 쓰는 행위를 비롯해 모든 의식이 부처님을 향한 간절함으로 이어져야 하며, 이것이 올바른 사경의 척도라는 것. 무심 스님이 말하는 사경의 절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목욕재계하거나 세수·세면과 양치질을 하고 옷을 단정히 한다. △사경 책상과 좌복을 놓고 책상 위에 사경할 경전과 도구 일체를 가지런히 준비한다. △좌복 위에 앉아 마음을 고요히 한다. △합장하고 자세를 바르게 한 후 의식문을 염송한다. △붓이나 붓펜을 잡고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사경을 한다. △일자일배, 일자삼배가 어렵다면 한 줄 쓰고 난 뒤 합장이라도 해라. △본문 사경이 끝나면 사경한 날짜와 사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쓴다. △사경을 통해 가장 청정해진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위해 축원을 한다. △사경이 끝나면 손수 쓴 경전을 들고 소리 내어 한 번 독송한다. △사경 회향문을 읽고 불전에 삼배한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