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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연습

기자명 법보신문

만날 때 이미 떠날 것을 알았듯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살다 보면 무언가로부터 이별을 해야만 하는 때가 온다. 오랫동안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 이사를 한다거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헤어져야 한다거나, 좋아하는 일이나 귀중품과 인연이 다 되어서 이별을 해야 하는 때도 온다.

지난 주에는 나도 이런 이별을 경험했다. 햇수로 두자리 수가 넘는 미국 생활을 뒤로 하고 중국행 비행기에 올라 탄 것이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심에 일년 정도의 중국행을 결심했지만 막상 떠나려하니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14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 시간 동안 지난 몇 년간의 내 생활들이 길다란 파노라마 사진처럼 쭉 떠올랐다.

떠나려는 나의 마음 안에서 걸리는 그 무엇들 굳이 언어를 가져다 붙이면 ‘회한’이랄까 ‘아쉬움’이랄까 이 끈적끈적한 정(情)과 습관의 고리에서 만들어낸 사바세계와 나를 묶는 마음의 요동이었다.
아! 분명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도 이럴 텐데. 이런 이별의 순간이야 말로 나의 수행 정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또한 평소에 많이 익숙해지고 잘 아는 곳을 떠나서 잘 모르는 환경으로 나를 집어넣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드러나는 두려움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분명 죽음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두려워하는 것일 것이다.

북경에 내리니 벌써 깜깜한 밤이었다. 옆 좌석의 아기가 많이 칭얼되는 바람에 잠을 별로 자지 못해 피곤했지만 막상 공항을 빠져 나오니 긴장을 한 탓인지 정신을 맑았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택시 운전 기사는 나를 예정이 된 학교 기숙사로 잘 데려다 주었다. 낯설은 이방인을 골탕 먹이는 운전 기사를 만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처음부터 운이 좋다. 서툰 중국어로 수속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니 그제서야 피곤함이 몰려 왔다.
아침에 눈을 떠서 본 북경의 가을 하늘은 정말로 깨끗하고 청명해 보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런 날씨가 일년에 10일 정도 있을까 말까한다고 한다.

아침 시간에 출근하는 자전거 부대가 보인다. 서양인들의 눈에는 중국의 교통이 자전거 사람 차가 엉켜서 엄청나게 무질서하게 보인다고 하는데 그런 무질서처럼 보이는 가운데에도 그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일종의 룰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왜 중국에 와야 되었는지 중국에서 나는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아직 모르지만 태평양이라는 죽음의 터널을 지나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 나의 마음은 지금 신기함과 두려움을 안고 북경 시내를 홀로 걷고 있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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