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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안락사 논란

기자명 법보신문

고통 벗게 한 선행인가, 죄악인가

안락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첫 번째 계기는 1975년 4월 미국에서 일어난 카렌양 사건이었다. 여성 카렌양이 친구 집의 파티에 갔다가 칵테일에 정신안정제를 타서 마신 뒤 회복불능의 혼수상태에 빠졌다. 부모는 딸이 식물인간 상태로 계속 살아가기보다,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내고 평안하게 죽기를 원했다. 신부와 상담한 뒤, 아버지가 담당의사에게 의견을 제시했으나 의사는 이를 거부했다. 1976년 3월 뉴저지주 최고 재판소는 부모의 희망을 받아들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해 9월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냈지만 그는 혼자 힘으로 계속 호흡을 유지하면서 9년여 동안이나 식물인간 상태로 살다가, 1985년 6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카렌양 사건 이후 안락사 문제와 관련된 사건이 세계 각국에서 잇달아 보도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91년 4월 도카이 대학 부속병원에 입원중인 58세의 남성 환자는 골수암 진단을 받았다. 부인과 장남은 약물요법으로는 한계가 있고 환자가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부친의 고통을 지켜보며 안락사를 원하는 아들의 바람에 따라 의사는 자기 판단만으로 염화칼륨 원액을 주사해 환자를 죽게 했다. 의사는 살인죄로 기소되었고, 검사는 환자의 아들이 안락사를 원하기는 했지만, 주사의 내용을 가족에게 설명하지 않은 점은 부적절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1995년 3월 집행유예로 유죄판결이 나왔다.

프랑스의 건강한 청년, 뱅상 윙베르는 19살 때인 2000년 9월24일 귀가하던 중 대형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9개월간의 혼수상태를 거쳐 식물인간으로 3년을 살았다.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제외한 전신마비 상태에서 알파벳을 불러주면, 글자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의사소통하다가, 어머니가 안락사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청원한다”고 그는 대통령에게 편지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프랑스 전역은 안락사 논란에 휩쓸리기도 했다. 사고가 난지 3년째 되던 날, 어머니가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투여해 아들의 긴 고통에 종지부를 찍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호주에서는 2002년 5월 말기암환자가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사량의 바르비투르약제를 복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말기 암환자 낸시 클릭(69세) 할머니가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약물을 과다 복용해 자살했다. 안락사 찬성론자인 의사 필립 니츠케는 “가족과 친구 등 21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가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또한 85세인 호주의 말기 암환자, 아서 쉴퍼루우드가 2002년 4월 퍼스 남쪽 클레
어몬트 부두에서 휠체어를 몰고 바다로 돌진해 자살했다. 품위있게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의사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색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택했다.

또 영국에서는 2003년 4월 29일 43세 동갑내기 전신마비 여성2명의 운명이 엇갈렸다. 3월 영국의 고등법원으로부터 생명을 위한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받은 미스 비라는 여성이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평화롭게 숨졌다. 반면 남편의 도움을 받아 자살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다이앤 프리티라는 여성의 요청은 유럽 인권위원회에서 거부당했다. 영국의 형법상 자살을 도울 경우 최고 14년형을 받는다. 생명연장을 위한 치료를 포기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택한 여성은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찾았지만, 약물 등을 이용해 목숨을 끊는 ‘적극적 안락사’를 원한 여성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두 여성은 의식이 남아있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여성이었다.

중국에서도 안락사 문제와 관련해 97세의 문호 바진(巴金)이 화둥(華東) 병원에 입원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주위에서 “손 좀 들어보세요”라고 소리치면 간신히 눈을 뜨고 손을 조금 들 정도. 그로 인해 중국대륙에선 안락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몇 차례나 “제발 생을 마치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가족은 물론 작가협회조차 고개를 젓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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