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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남북조시대 불교의 역사적 배경

남조는 출세간 태도 지향

북조는 국가불교 강조


동진이 멸망하고(420년) 수(隋) 나라가 전국을 통일할 때(589년)까지 중국은 선비족이 지배하는 북조(북위, 동위-북제, 서위-북주)와 한족이 지배하는 남조(송, 제, 양, 진)로 양분되어, 대체로 진령(秦嶺)-회수(淮水)를 경계선으로 삼아 남북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형국을 유지한다.

중국 역사학에서는 이 시기를 ‘남북조시대’(420-589)라 명명하여 이전 시기와 구별하지만, 시대 설정 자체에 다분히 한족 중심의 사관이 개입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북량을 ‘오호십육국 시대’와 ‘남북조 시대’의 양 시대에 모두 넣을 수 있게 되는 모호함이 생기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구분도 역시 재고의 여지가 있다 하겠다. 북방민족과 한족의 대립구도에서 보면 오호십육국-동진 시대의 구도가 다시 남북조 시대로 연속된다고 볼 수도 있으니 엄밀한 의미에서 ‘단절’은 찾아보기 어렵다. 역경사의 관점에서 나는 북량의 불교사를 오호십육국 시대에 포함시키겠으며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남북조 시대’는 북위가 멸망한 439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담무참을 남북조 시대의 역경사에서 다루지 않고 오호십육국 시대에서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북조 시대에서 우리가 중시해야 하는 나라는 선비족의 척발규(拓跋珪)가 세운 북위(北魏 386-534)이다. 서쪽으로는 신강 동부, 남으로는 진령 회수까지 지배했고 149년을 유지했으니 그 영토의 크기와 왕조의 존속 기간에서 동시대 다른 왕조의 추종을 불허한다. 북위는 처음에는 평성(平城, 산서성 대동), 이후에는 낙양(493)에 도읍을 정했다. 439년 태무제 때 북량을 멸망시키고 양주를 손아귀에 넣는데, 이를 계기로 강북의 불교 중심지는 오호십육국 시대의 장안과 양주에서 평성, 낙양으로 이동하게 된다.

북조에서는 북위 태무제의 법난(446-452), 북주 무제의 법난(574-578)이 있기도 했으나, 이는 뒤집어서 보면 그만큼 불교계의 세력이 제어를 필요로 할 정도로 사회 정치 방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기 시작했다는 반증도 된다. 북제 때 위수(魏收 506-572)가 편찬한 좬위서좭에 좥석노지(釋老志)좦가 추가될 정도로 불교의 사회적 세력은 컸으며, 이러한 불교의 위세는 중국의 ‘삼대석굴’로 일컫는 돈황, 운강, 용문 석굴이 모두 북위 때 조성되거나 증축된 일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남조는 역대로 건강(建康, 남경)에 도읍을 정하고 한결같이 불교를 장려했기 때문에 자연히 남조 불교의 중심지는 건강이 되었다. 강력한 전제 군주제를 취한 북조와는 달리 남조는 귀족제 사회였다. 동진 시대 때 이미 현학을 등에 업고 귀족, 지식인 사회에 깊이 파고 들어간 불교는 남조 때 대다수 왕, 공, 귀족의 절대적 호응아래 큰 어려움 없이 귀족, 지식인 사회의 지적 자양분이 된다. 이렇게 보면 남북조 시대의 역대 정권은 전반적으로 불교에 우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사회적 세력이 커나감에 따라 국가권력과 불교계의 관계가 문제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위 태조 황시(396-397) 연간에 도인통(道人統: 승려의 통수권자)에 임명된 법과(法果)는 태조를 ‘당금(當今) 여래’로 칭송하며 사문도 마땅히 예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위서 석노지) 이러한 낯뜨거운 사상은 스승인 도안의 “국왕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불사를 일으키기 어렵다”는 판단을 과대 적용한 것이겠지만, 아무튼 이후의 북조 불교계에 고스란히 이어져 북조불교의 ‘국가불교적’ 성격을 형성한다.

한국 불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국가불교’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 위에서 파악할 수 있겠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똑같이 도안의 제자이지만 강남 지방의 여산에 정착한 혜원은 좬사문불경왕자론좭을 써 사문의 출세간적 태도를 견지한다. 이렇게 황제에 대한 승려의 예우가 남북조에서 달리 나타나는 까닭을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북조의 전제 군주 사회와 남조의 귀족제 사회의 반영으로 본다.



이종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북경대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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