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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안락사 논란-보라매병원 사건

기자명 법보신문

살인인가?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도 97년 보라매 병원 사건으로 인해 안락사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97년 12월4일 오후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머리를 다친 김씨가 서울시립 보라매병원에서 응급 뇌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부인 이씨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계속 치료를 해도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퇴원을 요구했다. 의사 양씨는 극구 만류했지만, 부인의 주장을 꺾지 못했고, 사망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뒤 퇴원시켰다. 김씨를 구급차를 이용해 환자를 집으로 옮겨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하자 5분쯤 뒤 환자는 호흡곤란으로 죽었다.

검찰은 98년 1월 의사 양씨 등에 대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치료해야 할 중환자를 보호자의 퇴원 요구만으로 집에 돌려보내 죽게 한 것은 살인행위”라 하여 사법사상 처음으로 살인죄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환자를 계속 치료했으면 회복할 가능성이 있었는지, 또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퇴원시켰다면 의사의 행위가 살인죄에 해당하는지 7년여 동안 검찰과 변호인 측 사이에 치열한 법리논쟁이 벌어졌다.
1심을 맡은 서울지법 남부지법은 살인죄를 적용했고, 서울고법은 살인방조죄를 인정했고, 대법원에서는 원심의 판결을 지난 6월 29일 확정했다. 1심의 판결이 알려진 이후, 전국의 병원에서는 살인방조죄 기소를 면하기 위해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퇴원시켜 왔던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퇴원시키기를 거부했다.

안락사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가 아직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행해져 왔다고 한다.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가족과 병원의 동의 아래 말기 환자를 퇴원시켰던 관행 자체가 소극적 안락사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판결의 영향으로 그 이후 의료현장에서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퇴원을 요구하는 가족과, 이를 거부하는 의사와 병원 사이의 마찰이 빈번하게 일어나 안락사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또 치료비가 없어 식물인간 상태인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숨지게 한 아버지에 대해 법원이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했다.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는 2004년 4월15일 경추탈골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며 6년 간 식물인간으로 지내온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어려워 호흡기 전원을 뽑아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아버지 전씨에 대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치료비 마련을 위해 집을 처분하고 가족 수입으로 더 이상 거액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일 뿐 아니라 피해자 간병을 위해 다른 식구들의 정상적인 가정생활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가정 불화가 잦아지자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아버지 전씨 역시 딸의 죽음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할 형편이고 범행 후 정황, 가족 관계 등을 참작해 이 같이 판결한다”고 말했다.
의학과 의료 기구의 발달로 무수한 생명이 구해지고 고통이 크게 경감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죽어 가는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의사들은 많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죽어 가는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가 생명유지 장치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그 장치를 제거해야 할까? 죽어 가는 사람에게 격심한 통증이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의사는 그의 삶을 종결짓는 결정을 내려야 할까? 또한 길고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고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생명을 이어가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곁에서 도와주어야 하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젠 대다수가 병원에서 죽는다. 죽어 가는 사람을 생명유지장치로 계속 목숨을 연명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자신의 삶을 불필요하게 연장하지 않고 인간적이면서도 존귀한 죽음을 확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하는 것은 한층 복잡한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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