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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임종 문화가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죽음 맞이하는 근본 이해부족

예전에는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얼마 전부터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일이 증가하게 되었다. 의료기계에 둘러쌓인 채 여러 가지 튜브를 몸에 꽂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대, 60대에 자연사했을 사람들이 암, 당뇨병, 뇌졸중, 치매 등의 병을 지닌 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머지않아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작별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심장마사지 등 응급조치를 취하기 위해 가족들은 병실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라 할지라도, 오직 육체적 연명만을 생각하는 의료 관계자가 응급실에서 ABC 조치(Air-Way: 기도 확보, Breathing: 산소인공호흡, Circulation: 혈액순환)를 취하면 몇 년간 생명을 붙들어 놓을 수 있다고 한다.

환자가 죽어 가는 순간 병원은 극도로 흥분된 광란에 휩싸인다. 환자를 소생시키려는 마지막 수단을 취하기 위해 일단 사람들이 침대 곁으로 달려든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환자에게 무수하게 약을 투여하고 바늘을 찔러대고 전기 충격을 가한다. 그가 죽어 가는 순간 심전도, 피 속의 산소량, 뇌파 움직임 등등이 면밀하게 기록된다. 의사가 이제 그만 이라고 선언할 때에야 비로소 이런 히스테리는 막을 내린다.
따라서 현대 의학을 ‘사람을 죽지 못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보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려는 환자의 가족으로서는, 이것이 과연 인간다운 죽음의 방식일까라는 의문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냥 죽도록 내버려두어야 할지, 아니면 연명치료를 계속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붙들어 놓아야 할지 가족들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만일 회복의 희망이 조금도 없는 경우라면 이런 식으로 난리를 피우면서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도록 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최후의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 않을까.

위암 말기 환자가 입원하고 있던 대학 병원 입원실은, 환자가 의식을 잃은 뒤 숨질 때까지 48시간 내내 초상집 분위기였다. 환자는 이따끔씩 괴성을 질렀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몸을 벌떡벌떡 일으켜 세웠다. 가족들은 이를 저지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의 가족은 “우리에게 곧 닥칠 일이라 생각하니 너무 힘들다. 어머니가 저 소리에 놀라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고 괴로워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눈을 감을 수 있는 임종실이 거의 없어 환자와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임종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당사자와 가족을 보살펴주는 임종문화도 없다. 근본적으로 죽음과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현대사회는 냉혹하게 편의주의에 빠져 어떤 영적 가치도 부인하기 때문에,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사람은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처럼 내팽개쳐진 듯한 느낌에 몸서리치게 된다. 티베트에서는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를 영적으로 돌보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현대사회에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대다수가 표하는 유일한 관심이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병실을 찾아오는 방문객은 갈수록 줄어들어 외로움과 두려움에 탈진한 상태에서 죽게 된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찾아오는 문상객 숫자는 다른 어느 나라 보다 많은 게 바로 우리 사회이다.
죽어 가는 사람을 돕는 일은 마치 쓰러진 사람을 향해 손을 뻗어 일으켜 세우는 것과 같다고 말해진다. 그처럼 상처받기 쉽고 극단적인 순간에 우리가 어떤 자세로 죽어 가는 당사자에게 임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 가장 상처받기 쉬운 바로 그 순간, 그리고 삶으로부터 떠나는 마지막 순간,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통찰력도 제시받지 못한 채 차가운 병실 한 쪽에 내팽개쳐진다. 이는 너무나 비극적이고 치욕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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