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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사만평 ‘깨달음’

박재동 감독 작품

불교 ‘화두’를 소재로 정치권 풍자

지금 제작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보고 싶은 작품을 꼽으라면 필자는 서슴지 않고 박재동 감독의 ‘바리공주’를 든다. 곧 개봉할 ‘원더풀 데이즈’와 더불어 가장 기다리는 작품이다. 5년의 제작 기간, 10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원더풀 데이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패가 달려있기 때문에 보고 싶다면, ‘바리공주’는 가장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을 구사할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박재동은 누구인가.

80년 세대에게는 한겨레신문의 ‘한겨레그림판’ 작가로 각인되어 있다. 당시 박재동의 만평은 신문만평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을 만큼 풍자 내용이나 만평 형식에서 새로웠다. 그러던 그가 인기 절정의 시점에서 돌연 한겨레그림판을 떠났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모두들 놀랐지만, 그러나 그의 진심과 능력을 의심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던 박재동이 다시 돌아온 것은 뜻밖에도 TV 뉴스 끝부분의 짧은 시사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그것을 통해 박재동의 날카로운 풍자정신을 애니메이션으로 접할 수 있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장편 작업에 차질이 있을 거란 생각에 착잡하기도 했다. 박재동 감독은 12명의 인원으로 매주 2분 30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획에서 그림, 베타 작업에 이르는 이런 작업은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다. 그러나 박재동은 9개월씩이나 해 냈다.

이 기간에 제작된 약 40편의 작품 가운데 불교와 관련된 것은 두 편뿐인데, 두 편 모두 뒤틀린 정치 현실을 불교의 화두와 연관시켜 웃음을 유도한다. 1998년 11월 15일에 방송된 ‘깨달음’이라는 단편은 제목에서부터 불교의 것을 빌어왔음을 알 수 있다. 총풍 사건이 정치계의 최대 이슈였던 그때, 그것을 풍자하는 방법의 하나로 불교만의 독특한 화술의 하나인 화두를 빌어온 것이다. 정치암이라는 암자에 젊은 스님이 수련을 하고 있다. 앞벽에는 총풍이라는 화두가 붙어있고, 뒤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를 닮은 두 노승이 있다. 한 스님(김대중)은 총풍은 배후가 있다고 하고, 다른 스님(이회창)은 총풍은 고문 조작이라고 한다. 화두를 안고 고민하던 스님은 두 노승이 손잡고 웃는 것을 보고 문뜩 깨닫는다. “배후란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며, 고문 또한 한 것이 안한 것이며 안한 것이 곧 한 것이어서, 하고 안하고를 구별지을 필요가 없나이다.” 답을 들은 두 스님은 “그것을 유야무야(有耶無耶)라 하지!”라며 응수한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은 두 노승은 아차 싶어 “지금 누굴 놀리는 거냐”며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난다. 결국 정치권 싸움이 유야무야라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는 셈이다.

간혹 박재동 감독이 불교를 편파적으로 이해해서 어설프게 만평에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의혹은 한겨레그림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박 화백이 정치권을 풍자한 것이지 불교를 풍자한 게 아니라는 것이며, 풍자의 방법이 될 만큼 화두가 대중들에게 익숙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친근함을 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단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친근한 방법을 통해 첨예한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박재동의 장편을 필자가 기다리는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소재를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런 친근함은 그림풍에서도 드러난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동양 풍경을 화면에 담아낸다. 이 짧은 단편에서도, 촉박한 시간에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배경은 정겹고 아름답다. ‘바리공주’가 빨리 보고 싶다.

강성률 애니메이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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