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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마을 원장 승욱 스님

"아이들이 내겐 부처님입니다"

25년간 버려진 아이 돌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경남 고성 연화산 기슭에 자리잡은 청련암.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는 스님의 염불소리가 잔잔하게 흘러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법당 앞마당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놀고 있었다.

대부분 스님이라면 세간과의 인연을 끊고 깨달음을 본분사로 삼는다. 하지만 고통받고 소외 받는 아이들의 아버지이기를 자처하는 '보리수마을' 원장 승욱 스님은 세간과의 인연을 끊기보다는 수많은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25년전 터미널에서의 기막힌 만남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거나 부모의 이혼으로 버림받고 오갈 곳 없이 방황하는 아이들은 물론 생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버려진 유아와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도 스님의 몫이다.

승욱 스님이 이렇게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78년 3월,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의 '기막힌' 만남에서 비롯됐다.

"배고파요, 스님. 어제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요"

아직 겨울의 끝자락,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일곱 살배기 남자아이와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가 사슴처럼 떨고 있었다.

"그 추운 날씨에 한 달 정도는 길거리에서 헤맨 것 같았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부처님께서 제게 이생에서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수행을 대신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더군요."

스님이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평생 해나가야 할 '불사'라고 스스로 원을 세운 것도 이 남매를 절로 데려오면서부터다. 넉넉지 않은 절 살림에 스님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따뜻한 밥과 잠자리뿐이었지만 아이들은 이내 절 생활에 익숙해 갔다. 동시에 스님이 아이들을 돌본다는 입 소문이 퍼지면서 청련암 자식(?)들도 하나 둘씩 늘어만 갔다.

마을에서 족히 40분은 걸어야 할 산골짜기에 위치한 절 청련암. 그런 까닭에 들어오는 시주돈으로만 아이들을 키우기란 턱없이 부족했다. 스님은 아이들의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장례식장에서 염불을 하거나 49재를 지내는 등 백방으로 뛰어야만 했다.

그렇게 훌쩍 25년의 세월이 흘러 그 동안 40여명의 아이들이 이곳 청련암을 거쳐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잡았고, 때때로 이곳을 찾아오는 '자식'들을 볼 때면 흐뭇하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지난 25년이 제게는 눈물과 땀의 세월이었습니다. 때로는 아이들로 인해 절망해야 했고 무한한 행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제 삶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 날 없다고 했던가. 하물며 수십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스님에게 있어서야….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 부모 없는 자식이라는 놀림에 주먹을 휘두르는 아이. 버림받았다는 슬픔에 늘 그늘을 담고 사는 아이. 이런 아이들을 지켜볼 때면 스님은 온 핏줄을 잡아당기는 듯한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72명 아이들의 '스님 아빠'

때로 아이들이 가출이라도 하면 스님은 몇날이고 인근 지역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반드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가 10번을 나가면 스님은 100번을 나가 찾았다.

"가출한 아이가 그릇된 길로 빠질 것을 뻔히 알면서 그냥 둘 수 없었어요. 어렵게 찾은 아이의 손을 잡고 산길을 올라 올 때면 내가 정말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자책감과 회의에 눈물도 많이 삼켰습니다."

스님은 그 동안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공동체 생활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99년 6월 청련암 인근의 좌련 분교를 임대해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수십 년 된 낡은 학교를 개조해 만들어 불편한 것도 많지만 스님과 아이들에게는 대도시의 어떤 근사한 건물보다도 소중하다. 아이들이 예불을 올릴 수 있는 법당과 인성교육관, 2000여권이 넘는 도서실, 식당, 기숙사 등은 물론이며 비닐하우스지만 실내 체육관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32명의 아이들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자신이 설계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내 생애 100남매를 두겠다'고 말하는 스님은 아이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좇기보다는 세상과 맞붙어 싸워 이길 수 있는 자신감과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



희망-용기 주기 위한 순례도 실시

지난 92년부터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프로젝트도 이러한 까닭 때문이다. 92년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주제로 제주도 한라산을 시작으로 이듬해 백두대간, 서해안, 동해안을 순례했으며, 97년에는 마침내 보리수마을 가족 30명이 백두산을 순례하고 돌아왔다. 또 지난 2001년 8월 마라도를 첫 출발점으로 시작된 두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앞으로 백두대간, 울릉도를 거쳐 인도 카트만주, 부다가야, 그리고 히말라야까지 순례할 계획이다.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자 힘입니다. 이러한 여행은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스님의 지극한 정성 때문인지 현재 보리수마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성적이 우수하고, 절반 가량은 학교에서 학생회장이나 반장 등을 맡고 있다. 비록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아이들끼리 우애가 돈독한 것도 스님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마흔 개의 팔이 있다는 천수관음, 그 팔 하나마다 스물 다섯 가지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손이 천 개나 된다는 천수관음. 그 분이 천 개의 손으로 가련한 중생들의 천만 근심을 어루만져 주듯 승욱 스님의 억센 팔은 버림받은 아이들에겐 이미 따뜻한 천수관음의 손이었다.



승욱 스님 인터뷰 - "생명 살리는 게 가장 큰 불사"

"작은 물이 흘러 큰 강을 이루듯이 작은 정성이 모이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승욱 스님에게는 보리수마을 원장이라는 직함 이외에 또 하나의 직책이 있다. 대한불교감로심장회(이하 심장회) 이사장 이 바로 그것.

지난 90년 설립된 심장회는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무료시술지원을 하고 있으며, 환자들의 간병봉사와 헌혈 지원 장기기증 주선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지난 97년부터는 국내 심장병 어린이뿐만 아니라 '우리 동포 심장병환자 수술지원사업'을 시작해 그해 10월 중국 요령성의 최월향 심장병어린이를 초청 무료 심장병수술을 해줬으며, 현재까지 3명의 어린이에게 무료시술을 해줬다.

또 심장회는 분기별 농어촌 순회 무료검진 사업을 실시해오고 있으며, 불우한 환자를 위한 간병인 사업, 이동 목욕사업 등 연인원 약 6000명에 가까운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있다. 이 밖에 현재까지 심장회를 통해 심장병수술을 받은 사람은 174명, 심장병 무료검진은 5만8000 여명에 달한다.

스님은 "음지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생명의 감로수가 되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이라며 "생명을 살리는 운동에 불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심장회 055)747-0106



경남 고성=김형섭 기자
hs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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