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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죽음에 대한 오해

기자명 법보신문

‘죽음 수용’은 ‘삶 포기’아니다

* 죽음수용은 삶의 포기? :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 허무하니까 삶에 소홀하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죽음을 수용하자는 것은 결코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삶을 보다 의미있게 영위함으로써 죽음을 한층 편안하게 맞이하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표현이다. 죽음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삶을 보다 충실하게 살게 된다. 따라서 죽음수용은 결코 삶의 포기일 수 없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므로, 죽음수용은 삶의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수용이다.

* 생명경시풍조? : 자기 생명을 자기 소유로 생각해 자살하거나, 자녀 생명까지도 자기 것으로 착각해 동반자살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자주 벌어지고 있다. 자기 생명이든 자녀의 생명이든 자기 소유로 생각해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자살은 생명을 살상하는 행위로, 불교의 제1원리 불살생의 계율을 범하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인가? :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오해가 바로 “죽으면 다 끝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다. “죽어버리면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달라이라마에 따르면, “죽음이란 옷을 갈아입는 과정”일 뿐이므로, 영혼이 육신의 옷만 벗는 것이다. 육신의 옷만 벗는 것일 뿐 영혼은 새로운 세상으로 떠난다. 퀴블러로스 박사는 죽음에 직면한 어린아이를 향해 다음같이 말했다. “우리 몸은 번데기와 마찬가지이다. 죽으면 영혼은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나비처럼 예쁘게 날아서 천국으로 날아간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 삶과 죽음은 단절? : 죽으면 끝이라는 오해에는 죽음으로써 삶과 단절하겠다는 기대도 깔려있다. 우리의 삶, 죽어가는 과정, 그리고 죽음 이후 세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어제는 이미 지났으므로 죽음에 해당된다면, 오늘 우리는 살고 있으므로 삶에 해당된다. 어제 우리의 삶은 사라졌지만, 어제의 삶은 오늘의 삶에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자기존재와 오늘의 자기 자신이 단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의 연결을 전제로 해서 우리 존재는 성립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떤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그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조금의 가감도 없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그의 삶과 죽음 이후까지 추론해볼 수 있다.

* 죽음준비는 삶의 준비! : 죽음이란 말이 오해를 많이 받듯이, 죽음준비란 말 역시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죽음준비란 말을 사람들은 마치 죽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듯싶다. 그러나 죽음준비는 삶과 죽음 각각에 관련해 말할 수 있다. 첫째 삶과 관련해 생각해보면, 죽음준비는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주어진 시간을 보다 의미있게 살라는 말이다. 둘째 죽음과 관련해 말하면, 죽음은 갑자기 찾아올 수 있으니까, 죽음이 불현듯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를 하자는 뜻이다. 따라서 죽음준비는 주어진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있게 영위함으로써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자는 의미이므로, 죽음준비는 죽을 각오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한 마디로 삶의 준비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늦게, 실제로 자신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므로, 지나간 삶을 후회하면서 죽는 사례가 많다.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례가 많고, 자살 사망률이 최근 들어 급증하는 상황이고, 또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밝은 미소 속에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해볼 때, 죽음에 대한 인식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죽음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켜 삶을 바르게 영위하도록 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 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죽음준비교육은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삶을 보다 의미있게 살도록 하고 죽음을 한층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삶의 준비교육이고, 자살예방교육이기도 하다. 따라서 죽음준비교육을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 또 성인과 노인에 이르기까지 학교교육과 평생교육의 형태로 눈높이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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