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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의 길 열어젖힌 거룩한 몸짓 공양

기자명 법보신문

깨달음의 세계를 춤으로

창작무용가 윤 덕 경 교수

지난 11월 10일, 어둠이 짙게 내린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는 내로라하는 한국의 무용가들이 모여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다. 불교를 주제로 각각의 안무자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주제를 해석하고 창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승무(僧舞) 이수자인 김경주 씨의 해학 넘치는 오프닝 ‘비범벅춤’을 시작으로 김난현 씨의 ‘해먹’과 오은희 씨의 작품 ‘환(幻)·멸(滅)’이 이어졌다. 10~20명의 춤꾼들이 펼치는 화려한 몸짓은 관객의 탄성과 갈채를 이끌어냈다. 이어 무대에 오른 건 ‘고요한 시간, 그 깨달음-위파사나’. 이번 대회를 주관한 한국무용연구회 이사장인 윤덕경(서원대) 교수가 직접 안무를 맡은 작품으로 이미 몇 차례의 공연을 통해 숱한 찬사를 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깨달음 세계 표현 탁월

‘모든 사람 바삐 가는 걸음을 잠시 멈추어라. 인연 따라 만나고 흩어짐은 심은 대로 거두듯 자신을 향한 업보 짓는 대로 생겨나고 채워진다. 무한 속도, 제동 없는 질주, 세상의 가치를 따라 허우적거림. 그저 그대로 세상의 이치를 바라보라. 상념은 오직 사티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허상….’

윤 교수의 간결한 안무의도처럼 장중한 징소리로 시작된 공연은 질주의 시대, 망상의 광풍을 넘어 통찰의 과정에 이르더니 마침내 깨달음이라는 환희의 세계를 탁월하게 풀어냈다. 젊은 춤꾼들의 활달한 몸놀림도 가히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윤 교수의 춤사위야말로 이 작품의 백미였다.

위파사나서 느림의 미학 찾아

그의 섬세한 발놀림에서는 힘겨운 삶의 고뇌가 그대로 묻어나고 들썩이는 어깨짓에서는 숱한 번뇌와 슬픔이 독한 향수마냥 번져 나왔다. 특히 거대한 파도처럼 장중하다가도 한 순간 가벼운 깃털처럼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이 천변만화하는 손동작은 백천마디 말보다도 강한 메시지 자체였다. 그는 몸짓이라는 원초적 언어로 ‘빠름’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삶의 참다운 가치와 직면토록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 교수가 위파사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인으로부터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한 서양철학자의 책을 선물 받으면서부터다. 이를 계기로 게으름이 느림에 대한 관심으로, 다시 느림은 위파사나에 흥미를 갖도록 했다.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스치는 찰나의 생각까지도 알아차리려하는 위파사나의 통찰은‘나’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장애인을 둔 엄마의 아픔을 담은 작품 ‘어~엄마우으섯다’의 공연을 위해 그들과 어울리고 수화를 배우기도 했던 것처럼 윤 교수는 이번 작품을 위해서 위파사나를 직접 배웠다. 춤의 언어는 기교보다도 순수함과 진실된 몸짓에서 나온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스리랑카 스님을 찾아가 위파사나 수행을 시작한 윤 교수는 ‘관(觀)’이 어느 정도 몸에 익었을 때 비로소 춤사위에 불교수행과 깨달음이라는 세계를 표현해 냈다. 또 직접 새로운 아리랑의 가사말을 쓰기도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우리가 살면은 몇 천 년을 사는가.
마음 따라 가는 곳이 내 극락일세.
느린 걸음 잰걸음 흙으로 가는 길
날숨 들숨 멎게 되면 그만이라네.
내가 누구인지 들여다보아라.
초라한 내 모습에 눈물이 왈칵.


이런 각별한 노력 때문일까. 무용계와 일반 언론에서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을 뿐 아니라 ‘무한 속도의 세상 한 가운데 서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 이치를 바라보고 고통을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한국적 몸짓으로 구성해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법주사 전 주지 지명 스님도 ‘해탈의 길을 나타내려는 거룩한 몸짓 공양’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짝꿍을 따라 무용학용에 다니며 춤을 시작했다는 윤 교수는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 무용계의 리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한 후 고(故) 한영숙 선생으로부터 살풀이 춤, 승무, 태평무를 사사받고 강선영 선생의 사사로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로 지정받은 그는 80년대 중반 이미 그의 작품이 한국무용 베스트5에 오르기도 했다. 또 1988년 서울 올림픽 폐회식 때에는 ‘떠나가는 배’의 안무를 맡아 중견 무용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특히 89년에는 윤덕경무용단을 창단해 다양한 공연을 펼침으로써 이후 대통령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고, 미국, 독일, 캐나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곳곳을 순회하며 한국 춤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세계적인 안무가이기도 하다.



한국무용 세계화 리더

이런 윤 교수가 불연(佛緣)을 맺은 것은 70년대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찾은 송광사에서 마주한 사천왕상. 솟구쳐 곤두선 눈썹 아래 부릅뜬 두 눈방울, 울끈 불끈 성난 근육이 돋아 오른 안면은 분명 분노상이었건만 그토록 힘센 사천왕의 얼굴이 험악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순진무구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사천왕상이라는 단일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많은 표정과 감정들을 언젠가는 자신도 춤으로 표현하겠다고 내심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제자의 어머니 소개로 찾은 영주 성혈사에서 괴팍한 듯 하면서도 불교는 물론 문화전반에도 깊은 조예가 있던 봉철 스님을 만났다. 이를 계기로 윤 교수는 불교의 깊은 세계에 빠져 들어갔고 83년 마침내 그의 첫 개인 창작 작품도 불교에서 착안한 ‘연(緣)에 불타올라’를 공연하게 됐다. 또 이 때문인지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몇 년 전부터는 무용이 갖는 사회성과 계몽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장애인에 대한 현실과 아픔을 무용으로 표현하고 있다.

윤 교수에게 불교는 한국문화의 원형인 동시에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는 창조의 원천이다. “춤은 자아도취가 아니라 몸짓을 통한 대중과의 끊임없는 교감”이라고 강조하는 윤 교수. 그의 진중하고 그윽한 춤사위에서는 그 옛날 선사들이 현란한 언어보다 몸짓으로 깨달음을 드러내고자 했던 깊은 의도가 읽혀진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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