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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수행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4.11.30 10:00
  • 댓글 0
조사관 꿰뚫는 일은
시간과의 치열한 싸움

촌음 아껴가며
정진할 것 발원해야


철이 또 바뀌어 간다. 만상(萬相)의 색다른 변화. 황국단풍의 아름다운 계절도 저물고. 어는 새 한해도 다 가네! 잊었던 세월에 새삼 놀랜다.

시간의 느리고 빠름이 있을리 없다. 함께 달리다가 뒤처진 허탈감 때문인가. 시간의 빠름만을 개탄한다. 성장기의 젊은이들은 새날이 오면 새 것을 기다린다. 그래서 즐겁다. 그러나 따라 갈 기력을 잃은 늙은이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누구도 무엇도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현상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굴레를 벗어나려면 그런 현상계를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 수행자야말로 거기에 용감한 도전자일 것이다. 수행자의 목표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관(祖師關)을 꿰뚫은 연후의 일이 될 것이다.

조사관을 투득하는 일, 그 일은 무엇보다도 시간과 치열한 싸움이다. 현상계의 삼라만상은 시간의 제약 속에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의 싸움. 여기어 이기느냐 지느냐. 결판은 거기에 있다. 수행자는 더욱 그러하다. 수행자에게는 휴식이 없다. 간단도 없다. 연속부절 일로매진(一路邁進)이 있을 뿐. 한 치의 여유도 일각의 유예(猶豫)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벗어나면 그것은 방일(放逸)이 된다.

불교 수행인은 누구나 석가세존의 문하생들이다. 그 문하생은 그 스승을 닮아야 한다.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거기서 빗나갈 때 이미 문하에서 물러난 것이다.

스승이 왕궁의 영화를 버리듯이, 그 제자도 세속의 부귀를 내 던져야 한다. 물건을 버리는 그것에 한하지 않는다. 삶도 목숨까지도 도(道)를 위하여 걸어야 한다. 부처님의 제자란 이토록 거룩한 존재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옛 사람들의 정진을 오늘 그 표본으로 삼기 위하여 한 예를 든다
‘오늘도 그저 이렇게 헛되이 보내니
내일 공부가 어떠할지 알 수 없구나’
『선관책진』에 나오는 이암유권(伊庵有權) 선사의 시구이다. 공부의 성과 없음을 개탄하여 마지않은 스스로의 경책이라 함직하다.
우리의 참선곡에도 ‘옛 사람 참선할 때/ 마디그늘 아꼈거늘/…하루해가 가게 되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한고…’

이 모두가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한탄한 내용들이다.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에는
‘한 때 한 때가 옮겨져서 하루가 속히 가고
하루하루가 지나가서 한달이 속히 가고
한달 한달이 바뀌어져 어느덧 내년이 되고
한해 한해가 지나서 잠깐 사이에 죽는 문에 이르느리라…’

그런데 얼마나 산다고 닦지 아니하고 헛되이 방일하는고, 시간의 무상함을 경계하고 있다. 세존께서 열반하실 즈음에도, 아난이 열반 후 장례절차를 부처님께 물었을 때에 “장례식 같은 것은 재가신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 그런 일에는 상관하기 말고 출가수행자들은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부처님은 출가자 일동에게 고개를 돌려 “수행자들이여 모든 것은 지나간다. 게으름 없이 애써 정진하라.” 끝까지 세존께서는 시간 아껴 정진할 것을 염원하였다. 이상으로 음력 10월 15일 동안거에 부친다.

조달공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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