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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기자명 법보신문

삶-죽음의 방식에도 큰 형향

안락사(euthanasia)의 어원은 희랍어의 eu(잘, 아름답게, 행복하게, 편안하게)와 thanatos(죽음)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 ‘행복하고 편안한 죽음’, ‘행복하고 품위 있는 죽음’ 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안락사의 종류에는 자의적 안락사, 반자의적 안락사, 적극적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 등이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가 더 이상 치유될 수 없는 병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대로 두어도 살 수 있는 환자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소극적 안락사는 환자가 더 이상 치유될 수 없는 질병에 걸려 병세의 진행과정을 인위적으로 지연시킬 수 있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 두 가지를 서로 혼동하거나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듯싶다. 두 가지는 서로 유사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많다. 양자 사이의 공통점은 억지로 생명을 죽지 못하게 하는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것, 단 한 가지뿐이다. 차이점은 여섯 가지나 된다. : 1 행위와 판단의 주체, 2 죽음관, 3 삶의 태도, 4 죽음의 방식, 5 리빙윌, 6 작별인사의 방식.

1. 행위와 판단의 주체 : 소극적 안락사가 법으로 합법화될 경우, 소극적 안락사 여부를 결정하는 판단의 주체는 의사이다. 법으로 보장되었으므로, 의사는 소극적 안락사를 행할 권리를 지닌 것이다. 그러나 존엄사의 경우, 소극적 안락사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므로, 행위와 판단의 주체는 당연히 죽어가는 당사자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병의 진행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자기 생명을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느냐, 아니면 의사 혹은 가족이 결정하느냐 하는 판단 주체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2. 죽음관 :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당사자는 평소 죽음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죽음준비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생사관 역시 확립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단지 의사가 판단의 주체가 되어 소극적 안락사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리빙윌에 미리 서명하는 사람은 평소 죽음에 관심을 지녀 죽음을 자기 삶의 일부로 수용하면서 죽음을 준비했을 것이고, 어느 정도 뚜렷한 생사관을 정립했으므로, 존엄사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3. 삶의 태도 : 리빙윌에 서명한 사람은 죽음의 수용과 준비를 통해 자기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되새기면서, 제한된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있게 사는 방식을 모색할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소극적 안락사를 하느냐 여부에 직면한 사람은 죽음에 대해 평소 심사숙고하지 않았듯이,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4. 죽음의 방식 : 소극적 안락사 문제에 봉착한 사람은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다가 예기치 않게,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직면해 떠밀려 가듯이 소극적 안락사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리빙윌에 서명한 사람은 자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즉 존엄사를 평소 건강할 때 능동적으로 결정해 놓았다가, 어느 날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흔들림 없이 평소에 준비한 대로 편안하게 밝은 모습으로 죽음에 임하게 된다.

5. 리빙윌 : 소극적 안락사 문제에 직면한 사람은 당연히 리빙윌에 서명하지도 않았고 리빙윌이란 제도가 있는지, 리빙윌 혹은 존엄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존엄사에 뜻을 둔 사람은 리빙윌에 서명함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해, 또 자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역시 평소에 깊이 성찰한다.

6. 작별인사 : 소극적 안락사 여부에 직면한 사람은 갑자기 찾아온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족 친지와 작별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리빙윌에 미리 서명해 둔 사람은 작별인사도 마치 미리 준비해 두었다는 듯이 가족을 향해 편안하게 마지막 말을 던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는 이상과 같이 6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총괄적으로 보았을 때, 소극적 안락사는 소극적, 수동적, 부정적, 어두운 이미지라고 한다면, 존엄사는 적극적, 능동적, 긍정적, 밝은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결국 죽음의 방식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 나아가 죽음 이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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