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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호스피스의 활성화

기자명 법보신문
말기환자의 고독 나누는 삶 가치있어

앞에서 소극적 안락사의 세 번째 대안으로 호스피스의 활성화를 들었다. 서양 의학은 치료를 통해 환자를 단 1분이라도 더 연명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의사의 첫 번째 임무이므로, 환자의 죽음은 패배로 간주된다. 죽음을 이런 식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현대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어왔다. 의사와 간호사는 주로 치료에만 신경쓸 뿐이지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말기환자들이 겪는 정신적 불안과 고통을 어떻게 해야 덜어줄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더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환자를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피는 교육, 죽음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의사나 간호사는 받아본 일도 없다. 어느 날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여러 해 동안 근무하고 있는 현직 간호사가 연구실을 찾아왔다. 의사와 간호사가 죽음에 대한 아무런 교육을 받지도 않은 채, 또 스스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병실 한 구텅이에 방치하고 있는 의료계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그는 말했다.

삶의 질은 단지 살아있는 시간의 길이라는 양적인 측면으로만 측정될 수는 없다.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간주하는 호스피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과 죽음의 질을 함께 생각하면서, 말기환자가 인간답게 편안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프로그램의 총칭이다. 말기환자의 극단적인 불안심리, 주위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진정시키고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가치있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호스피스의 철학이다.

시한부 말기환자에게는 죽음의 공포와 함께 ‘왜 하필이면 나인가’ ‘왜 나만 죽어야 하는가’ 라는 분노의 감정이 밀려들게 마련이다. 이런 감정을 가라앉히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 가족이나 호스피스 봉사자의 몫이다.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은 임종환자들을 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의 문턱에 홀로선 말기환자의 공포와 고독, 그리고 분노를 함께 나누는 호스피스봉사는 ‘고통스러운 활동’이라고 어느 자원봉사자는 말한다.

임종환자가 맞는 삶의 마지막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해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호스피스가 지향하는 바이다. 임종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는 최대한의 관심과 배려를 제공한다. 삶의 마지막 과정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원하는 방식으로 남은 시간을 영위하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거운 의료기계에 둘러싸인 채 단지 육체적으로만 오래 연명하는 것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호주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젊은 여성 환자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처음 입원했던 병원에서 부작용이 심한 화학요법 치료를 받았는데 좋아지기는커녕 정신적으로 크게 고통스러웠다. 마침 어느 친절한 의사가 화학요법을 계속 써도 거의 효과가 없다고 설명해주었고 호스피스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나의 자유라고 말해서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죽음을 며칠 앞두고 그녀는 “나는 정말 행복해” 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녀의 밝은 미소는 주위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필자는 이상과 같이 논란만 거듭하는 소극적 안락사 문제와 관련해 세 가지를 제안했다. : 첫째는 죽음준비교육을 시행해 죽음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일, 둘째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에 미리 서명해두는 일, 셋째 임종환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제도의 활성화. 소극적 안락사의 세 가지 대안이 보다 활발하게 논의되어 시행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죽음의 질과 함께 삶의 질이 한층 높아지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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