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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투사에서 수행자로 푸른누리 최 한 실 씨

기자명 법보신문

고난한 삶의 영욕 놓으니
허공 안는 자유 찾은 느낌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북행 버스에 올랐다. 하루 다섯 번 운행하는 버스지만 평일인지 승객이 거의 없다. 1시간 반가량 한적한 도로를 달리니 입석분교가 나온다. 학교를 끼고 난 좁다란 길을 터벅터벅 올랐다. “얼마나 가야 하나요?” 길가에 있던 아주머니 답변이 걸작이다. “(얼마나 갈지) 잊어버리고 기냥 똑바로 가다보면 나와유.”

열댓 명은 됨직한 아이들이 손에 삽과 괭이를 들고 시끌벅적 오르고 있다. 입석분교 학생들로 전교생이 19명인데 오늘 오후 수업은 칡 캐기란다. 어설픈 시멘트포장길 끊기고 다시 산길을 10여분 올랐다. ‘이곳은 수행도량’ ‘정진 중’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나무 팻말이 서있다. 여기부터 ‘푸른누리’다.

상주군 입석면에 자리 잡은 ‘푸른누리’는 지난 95년 말 무소유, 무아집, 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시작된 생태공동체다. 한 때 20여 명이 생활했지만 지금은 이곳 대표인 최한실(57) 씨를 비롯해 단 두 사람만 살고 있다. 개울물을 건너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자 아담한 크기의 집 두 채와 잘 개간된 밭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미처 다 거두지 못한 양배추 밭 뒤로는 백두대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게 고요라는 말이 있잖아요. 여기 있으면 인조의 소음은 찾아볼 없어요. 대신 내면의 소리와 수많은 자연의 소리를 만날 수 있죠.”

최한실 씨가 박꽃 같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맞는다. 양지 바른 벽을 권하며 그는 방금 삶은 고구마와 감자를 내놓았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누군들 기구한 사연이 없을까만 최 씨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이도 드물 듯싶다.

독재에 맞서며 청춘 다 보내

경주가 고향인 그는 지난 68년 고려대에 입학했다. 고향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짊어지고 상경한 그였지만 시대상황은 그로 하여금 ‘모범생’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했다. 경제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모진 인권탄압, 하루 16∼20시간 일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어린 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은 그의 관자놀이에서 피가 펄떡이게 했다. 최 씨는 ‘경영학과’라는 보장된 미래 대신 ‘혁명학과’라는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그가 예견했듯 그 길은 죽음과 맞서야 할 정도의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또 온갖 회유와 협박에 시달린 것도 부지기수였고 결국 78년에는 수감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최 씨가 5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상황은 더욱 악화돼 있었다. 그는 다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부조리한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난의 시간은 눈물, 한숨과 더불어 흐르고 흘러 80년대 말 마침내 군부독재는 거대한 민중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런 투쟁의 방식이 인간의 욕망과 이기주의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은근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최 씨가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불교는 그저 하나의 좋은 사상에 불과하다는 기존의 생각과 달리 알면 알수록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진리가 불교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선농일치’ 공동체 결성

그는 90년대 초 문경정토수련원에서 ‘깨달음의 장’이라는 수련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시에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생태공동체를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인간이 소유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 이상 갈등과 대립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앞발을 들어 거대한 수레를 막으려는 어리석은 사마귀처럼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끊임없이 훼손하고 소비하는 인간의 독선과 무명(無明)을 없앨 수 있는 대안도 생태공동체에 있다고 믿었다.

95년 최 씨는 마침내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푸른누리’라는 생태공동체를 결성했다. 그리고 흙벽돌로 집을 짓고 수련장은 기와까지 올려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엄격한 규칙도 만들었다. 식사는 양껏 먹되 남겨서는 안되고 마지막에는 김치조각으로 접시를 깨끗이 닦아 먹을 것, 대변은 농작물의 거름이 될 수 있도록 잿더미를 이용할 것 등 삶 자체가 간단, 단순, 소박해지는 방향이었다. 의사결정은 물론 만장일치였다. 그리고 최 씨가 무엇보다 중점을 둔 것은 생활 속 수행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두와 비슷하게 특정 주제를 깊이 숙고하도록 했고, 이를 통해 인간존재의 본모습인 고통,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깊이 깨닫도록 이끌었다. 일종의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추구한 공동체 삶이었다.

그렇게 한해 두해 흐르면서 생활이 익숙해져갔지만 반대로 많은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온 이들이건만 완전한 무소유는 사실상 어려웠고 사소한 욕망으로 인한 미묘한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생활수행을 지향했음에도 내면의 변화가 외부의 변화된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최 씨와 구성원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2001년 결국 각자의 길을 걷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하나 둘 ‘푸른누리’를 떠나갔고 최 씨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공동체의 해체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푸른누리’를 이끌었던 그로서는 자신의 무능 탓이라는 자책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그러면서 궁극적인 삶의 전환은 환경보다 마음에 있다는 사실이 뼈를 깎아내듯 아프게 와 닿았다. 십수 년간 수행을 하며 다른 사람을 지도해 왔지만 정작 ‘마음’이라는 게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마음, 마음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일까.’

자연 벗 삼아 ‘위파사나’ 전념

그 무렵이다. 최 씨는 우연히 위파사나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깊은 끌림을 느꼈다. 그리고 90년대 초 읽었던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는 고엔카 수행법을 떠올렸고, 인도에서 그 수행자가 일반인들을 직접 지도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인도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삶의 진실’을 알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직접 집도하는 마음의 수술’이라는 위파사나. 철저한 침묵 속에서의 관(觀)은 최 씨가 그동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려 했던 노력들이 극히 피상적이었음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삶이 고통이고, 무상이고, 무아라는 점과 자신의 업장이 수미산처럼 두터움도 이론이 아닌 온 몸으로 체득하게 됐다.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내려놓으라고 하면서도 난 끊임없이 짊어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민중, 조국, 통일, 불교, 공동체 등 숱한 이름을 띠면서 말이죠. ‘푸른누리’ 식구들도 모두 제각각 터를 잡아 농사지으며 조화롭게 잘 사는데 더 이상 미련 둘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이제야 정말 자유를 찾은 느낌입니다.”

술 없고, 담배 없고, 고기 없고, 텔레비전 없는 깊은 산골마을. 대자연 속에서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그의 삶은 파괴와 죽임의 현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토록 한다.

해 떨어진 산골을 벗어나기 전 그에게 물었다. 만약 60~70년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는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의 웃음 같기도, 세상을 달관한 도인 같기도 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뭐 어쩌겠어요, 그 일을 또 해야지. 하지만 이제는 열심히 하되 얽매이지 않고, 독재에 맞서되 미워하지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흔들림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사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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