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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찬 마하부와 〈하〉

기자명 법보신문

계율-두타행 한평생 엄수한 고승

<사진설명>마하부와 스님이 태국의 왕과 왕비에게 법문하고 있다.

지난 호에 아찬 마하부와 스님의 삶과 가르침의 일부를 소개하였다. 이 번호에서는 스님이 스승인 아찬 문 스님에게서 지도받은 ‘마음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수행승들에게 중요한 점은 마음의 원칙(priciples in the heart)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원칙들’이란 아라한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단계의 마음집중(선정)과 지혜를 말한다. 마음의 원칙이 좋으면, 우리들이 수행을 할 때의 원칙들도 모든 측면에서 좋을 것이다. 이것이 마음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마음 수행에서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의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과는 아주 다르다. 마음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서,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 타협을 할 때가 있다. 물론 그러한 타협에는 이유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 타협을 할 경우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들이 수행해온 것을 손상시킨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아만심이나 애착이나 집착 등의 번뇌를 물리친다는 것이다.

탁발한 음식으로 한 끼 식사

타협으로 잠시 수행에서 물러나 있다가도 언제나 어렵지 않게 자신의 수행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있는 이가 진정한 수행자이다. 아찬 마하부와 스님은 엄격한 숲속 수행의 전통을 따르는 일과 일시적으로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타협하는 일을 하는 것을 잘 조화시키면서 수행하라는 가르침을 아찬 문과 함께 살면서 배운다.

아찬 문과 함께 머문 첫 해에 아찬 마하부와스님은 숲속의 고행전통(두타행)에 대해서 듣는다. 예를 들면 하루에 한 번의 식사를 한다는 것 등이다. 아찬 마하부와 스님은 자신이 탁발을 해서 받아온 음식만을 드시면서 수행했다. 이 원칙을 확고하게 지켰다. 하지만 신도들이 찾아와서 음식을 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스님은 완강하게 받지 않았다. 두타행의 원칙을 지키려는 마음에서였다. 이렇게 1년 동안 철저한 탁발에 의한 한 번의 식사 원칙을 지켜나갔다. 다음 해 우기였다. 이러한 아찬 마하부와의 생활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아찬 문 스님은 탁발을 끝내고 온 아찬 마하부와 스님에게 음식을 가지고 와서 ‘이것은 동료 수행자가 주는 것이니 받아 주시오’라고 하면서 음식을 건네주었다. 아찬 마하부와 스님이 지켜온 원칙을 깨야하는 순간이었다.

경전 가르침 온몸으로 실천

<사진설명>마하부와 스님이 대중법문을 하고 있다.

아찬 마하부와 스님은 이 음식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며칠 후에 아찬 문 스님은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다시 아찬 마하부와 스님의 발우에 음식을 넣어주었다. 아찬 마하부와 스님은 자신이 지켜오던 원칙이 깨지거는 것을 두려워했거나 아무리 양보해도 그 원칙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아찬 문 스님은 바로 이러한 아찬 마하부와 스님이 탁발식의 원칙을 지키려는 태도에서 자아의식(아만심)을 보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다스려주시기 위해서 음식을 주신 것이었다. 이렇게 아찬 문 스님은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가르침을 주셨던 것이다.

아찬 마하부와 스님은 엄격한 수행자로 유명했다. 자신이 탁발한 음식만을 먹는다는 13가지 두타행의 한 원칙을 엄격히 지키던 아찬 마하부와 스님은 누구라고 자신의 발우에 음식을 넣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존경하는 스승이 아찬 마하부와 스님만은 예외였다. 자신이 지키기로 마음먹은 원칙과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갈등을 일으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편치는 않았지만 스승이 주는 음식을 받았다. 이것이 수행의 원칙과 마음의 원칙 사이의 차이이다.

아찬 마하부와 스님은 수행에 철저하였지만, 아직 법을 얻은 단계(깨달음의 단계)에 까지는 이르지 못했었다. 스승인 아찬 문 스님은 이와는 아주 달랐다. 그 분은 무엇인가를 보아도 마음의 모든 각도에서 완전히 꿰뚫어 보았다. 제자들이 오직 한 각도에서 사물을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찬 문의 지혜가 제자들에게는 아직 없었기 때문에 그 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아찬 문과 반 나 몬(Baan Naa Mon)에서 보내면서 받은 가르침이었다.

“마음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수행의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지혜롭다는 가르침은 우리의 수행에 적용할 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근본번뇌를 없애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며, 따라서 수행자는 원칙으로서 계율이나 두타행의 규범을 지켜나간다. 이러한 수행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으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의 번뇌를 다스려 나간다는 마음의 원칙이다.” (『있는 그대로(Things as they are)』 77쪽 이하, 1977년 1월 19일 법문에서)

“수행자 우월의식조차 버려야”

이러한 가르침을 수행의 원칙에 철저했던 선지식 아찬 문 스님과 함께 살면서 그 분의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원칙을 배웠던 아찬 마하부와 스님은 위의 법문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경전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실제 생활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데는 실천 수행을 통한 체험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 우리는 아찬 마하부와 스님이 말씀하신 수행의 원칙과 마음의 원칙을 잘 이해하고 마음의 원칙을 바탕에 둔 수행의 원칙을 따라간다면, 수행자라는 아만에 걸리지 않으면서 진정한 수행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우리는 계정혜 삼학을 필요할 때만다 적시에 적용하면서 마음의 번뇌를 다스려 나가야 할 것이다.

수행한다는 자아의식, 절에 오래 다녔다고 하는 자아의식, 경전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 자아의식이 있는 한 우리는 아직 극복하고 벗어내야 하는 번뇌를 지니고 있음을 일단 인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수행의 원칙, 불자(佛子)의 원칙보다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원칙, 번뇌를 다스리는 원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수행해 나간다면, 수행에 걸리지 않는 수행으로 마음의 평온을 이룰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김재성〈경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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