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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은[br] 구도길 떠나는 이에[br]가장 고귀한 스승

기자명 법보신문

위파사나 수행 황 영 채 - 오 원 탁 씨

<사진설명>황영채(왼쪽)씨와 오원탁 씨는 사회에서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수행'을 인연으로 도반이 되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봉착
‘마음 다스리기’ 고민 중
묘원법사 만나 정진

인도 성지순례 후
초기불교 관심 커
위파사나 수행에 전념


인연은 ‘스스로 지어간다’고 한다. 다만 한 개인의 원력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맞이하는 인연 또한 달라질 것이다.

서울대 법대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대학에서 법학 강의를 했던 황영채 씨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삼성엔지니어링을 거쳐 한국가스안전공사 연구소장을 역임했던 오원탁 씨. 그들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인연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이순을 넘긴 황영채 씨. 그는 15살 때부터 『금강경』을 독송해 온 신심 돈독한 불자다. 그의 어머니는 단 하루라도 독경하지 않으면 다음날 두 배로 독송을 시켰다고 한다. 학업 공부는 그리 강요하지 않았으면서도 경전 공부만큼은 철저하게 시켰던 그의 어머니는 바로 고 황산덕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대법선 보살.

도반과 함께 선원·출판사 설립

부처님오신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데 앞장섰던 황산덕 씨는『여래장』을 저서로 남길 만큼 불심은 물론 교의에도 밝았던 거사였다. 성균관대 총장 한국법철학회 회장에 이어 대한불교진흥원 2대 이사장을 역임했던 그는 전국 사찰에서 수많은 강연도 펼쳤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부인 대법선 보살은 자신의 집에 있던 경전을 접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대각회 창립을 선도했던 그 역시 ‘금강경 읽기 운동’을 전국에 펼치기도 했다.

“아버님은 절이나 재가단체에서 강연할 때면 항상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불교 공부를 저절로 한 셈이지요. 어머니는 당신이 경전을 통해 귀의해서인지 제게 늘 경전독송을 강조하셨습니다.”

부모 손을 잡고 전국 사찰을 다니며 만났던 당대 큰 스님들의 미소를 그는 잊지 않고 있다.

지금도 구산, 성철, 청담 스님이 자신의 손을 잡으며 머리를 어루만져 준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오원탁 씨는 청담 스님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불교에 심취했다. 1968년 서울대 공대 초청 청담 스님의 『반야심경』강연회를 통해 법의 진수를 만끽했던 그는 이후 교양대학에서 체계적인 교리를 공부하며 불법 체득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사회 생활에 여념이 없던 그는 1999년 한국가스안전공사 소장 자리를 놓고서야 그토록 자신이 원했던 불교 공부에 매진했다. 그 첫 걸음은 수덕사 무불선학대학원서 시작됐다. 당시 대학원에는 혜거, 상목 스님을 비롯해 심재룡, 강건기, 박영재 씨의 강사진이 포진해 있었다.

“그 때 공부 참 잘했습니다. 그 동안 여기저기 흩어졌던 불법이 하나로 꿰어지는 듯 했습니다.” 무불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이후 중국과 인도를 순례하며 불교의 참맛을 더해갔다. 성지순례 후 초기불교에 관심의 무게가 기울면서 위파사나 수행의 길에 올랐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수행’이라는 고리를 통해 그 인연이 맺어졌다. 바로 위파사나 수행이었다. 아직 불교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위파사나 수행에 매진하고 있는 묘원 법사가 처음으로 강연을 한 것은 지난 2002년 9월 보리수 선원 법석이었다. 바로 그 도량에 운집한 대중 속에 두 사람도 함께 했던 것이다.

황영채씨는 이미 묘원 법사의 지도아래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가 위파사나를 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지만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금강경에서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하지 않습니까?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느냐하는데 봉착했습니다. 도대체 그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그러다 위파사나 관련 서적을 보게 됐고 급기야 묘원 법사와의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수행을 해 보라는 주위의 권유에 겁부터 들었다고 한다. 수행은 큰 스님들이 해서 구경각을 이루는 것인데 근기 낮은 자신이 어떻게 수행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생 『금강경』을 독경해도 그 마음 하나를 어찌하지 못했으니 늦었지만 한 번 해보자는 용기를 내어 좌복 위에 앉았다. 그리고 차츰 그 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변화들이 찾아들었다. 황영채 씨의 수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위파사나 수행에 조금씩 맛을 느껴가고 있던 오원탁 씨 역시 보리수 선원에서 위파사나 강좌가 있다는 소식에 열일 제쳐두고 한 걸음에 달려갔다. 9월 30일 시작된 강의는 10월 25일까지 지속됐다. 20일 동안 각 1주일에 5일씩 신수심법 각각에 대한 강의가 진행됐다. 강좌가 끝난 후 대중은 묘원 법사로부터 좀더 많은 지도를 받기를 원했다. 두 사람은 다른 도반들과 원력을 합쳐 강남여성인력개발원에 자리를 마련해 강의를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원력이 진실하면 그에 따른 인연 또한 하늘에 구름이 일 듯 자연스러게 찾아오는 법. 재단법인 청호불교문화원이 그들의 신심을 알고 선원을 마련해 줬다. 지난 4월 문화원 1층에 묘원 법사를 선원장으로 ‘한국 위빠사나 선원’을 개원함과 동시에 위파사나센터 카페(www.vipassnacenter. com)를 개설했다. 황영채 씨와 오원탁씨는 도반 15명과 함게 ‘행복한 숲’이라는 출판사도 등록해 위파사나 서적을 중심으로 한 불서 출판을 시작했다. 그 첫 권이 바로 오원탁 씨가 번역해 최근 선보인 『큰 스승의 가르침』이다.

“이제 시작입니다. 선원은 우리 도반만의 것이 아니라 수행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을 위한 도량입니다. 출판사 역시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위파사나를 보급하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설립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원력대로 선원은 누구에게든지 무료로 개방된다. 출판사는 향후 위파사나 수행을 유럽 등 세계 각국에 전파한 마하시 사야도 관련 책과 수행지침서를 잇따라 출간할 예정이다.

수행 풍토 조성에 일조

현재 그들의 수행 경지를 두고 수승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난 5~60년을 걸어오며 가슴에 담은 원력은 참으로 수승하기만 하다. 이제 그들은 그의 도반들과 함께 그들이 마련한 도량에서 무명을 걷어 내고 있다. 그리고, 수행의 길로 들어서는 또 다른 인연 속의 도반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원력이 이제 좋은 토양을 만나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가꾼 한 그루의 나무가 청정한 숲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한국위빠사나 선원은?

무료이용…초보자 과정도 마련

서울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한국위빠사나 수행선원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5시 30분까지는 묘원 법사의 위파사나 강의가 이뤄진다. 초보자 수행 코스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월 8회에 걸쳐 진행된다.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뿐 아니라 느낌과, 마음, 법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지난 12월 1일 시작한 제3차 위파사나 수행 초보자 코스는 27일까지 진행된 후 다음달 제4차 초보자 과정이 마련된다.
수강료는 없고 자율보시로 이뤄진다. 02)512-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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