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4년 탑비에 ‘선종’문장 명시 확인 10세기엔 이미 종지-종파 널리 퍼져
조계종 교육원과 불교신문이 6월 29일 조계사에서 공동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사진)는 “9세기 경 중국 선종은 이미 종파로서의 체제를 완비한 상태였으며, 이러한 중국 선종의 분위기 속에서 유학한 신라 승려들은 자연스럽게 선종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현재 다수 학자들의 견해가 9세기에는 화엄종이나 유가종만이 종파로서 확립되었을 뿐 선종은 10세기나 그 이후에 형성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금석문을 중심으로 사료를 검토한 김 교수에 따르면 884년 세운 ‘보림사보조선사탑비’ 내용 중 ‘선종을 포상하는 예(褒其禪宗禮也)’라는 문장에서 나타나듯 ‘선종’이라는 종파명이 9세기에 이미 분명히 나타나고 있으며, 886년 세운 ‘사림사홍각선사비’에서는 “법은 본래 참도 거짓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곧 선의 종지에 이를 수 있다(知法本不眞不假 達禪宗)” 선의 종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선문의 형성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되는 9세기 후반 경에 이르면 종파로서의 ‘선종’에 대한 인식이 정착됐으며, 10세기 자료에는 종파명이 분명한 선종의 이름이 더욱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한편 김 교수는 허흥식 교수가 ‘봉암사지증대사비’ 등을 근거로 주장한 ‘14산문설’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즉 최치원이 이 비문에서 13산문과 13개 산조를 열거했으며, 비의 주인공인 도헌을 포함하면 14산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이들 14산문이 지속되다가 의천의 천태종에 5산문이 흡수되면서 9산문으로 전개됐다는 허 교수의 입장에 대해 고려사를 비롯한 서지학적 근거들을 들어 9산선문으로 바라봐야 할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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