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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 스님〈하〉

기자명 법보신문

“남을 살리고 이롭게 해야 보살”

<왼쪽>'유심사상'의 핵심을 강의하고 있는 청담 스님 | <오른쪽> 열반하기 하루 전 이대에서의 마지막 설법

“부처님께 절부터 올려야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생사여탈권은 물론이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통째로 대통령 손안에 있었다.

1960년대 초반, 그 무서운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서울 우이동 삼각산 도선사로 청담스님을 만나뵈러 왔다. 당시 도선사를 가려면 누구든 수유리 종점에서부터 걸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수유리 종점에서부터 도선사까지는 등산객이 다니던 소로길 밖에 없었다. 그것도 장장 3Km가 넘는 비탈길이었다. 대통령 부인 육여사가 그 멀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 도선사에 올라온 것이었다. 한 제자 현성이 청담스님께 급히 아뢰었다.

“스님, 대통령 영부인께서 오셨사온데, 스님께 인사부터 올리시겠다 합니다.”
청담스님은 고개부터 저으셨다.
“무슨 소리. 누구든 절에 왔으면 부처님께 절부터 올려야 하는 법, 석불전부터 참배토록 해야할 것이야.”
“예 스님, 그리 하도록 모시겠습니다.”
그래서 제자 현성은 육여사를 석불전으로 안내, 부처님께 인사부터 올리게 했다.
이 때 육여사는 도선사에 며칠 머물면서 ‘대덕화(大德華)’라는 법명을 받고 석불전에 지극정성 불공을 올렸다.
청담스님은 이때 대덕화보살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대덕화는 이제부터라도 보살행을 부지런히 닦아야 해.”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요, 스님?”
청담스님은 나직히 말씀하셨다.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살리는 것이 보살이야.”
“그러면 오로지 남을 위해서만 살아라, 그런 말씀이시옵니까?”
“남을 위해 살면 보살이요, 자기를 위해 살면 중생인게야.”
“아 예, 잘 알겠습니다. 스님.”
이 때 청담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간곡한 당부 말씀을 들은 덕분이었을까 그 후 육여사는 그윽하고 청초하고 겸손한 자세로 늘 백성들에게 후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모대접 해줄테니 받겠는가?”

육여사가 도선사에 머물고 있는 동안 청담스님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당부하곤 하셨다.
“이것 봐, 대덕화. 그대는 앞으로 참다운 보살행을 많이 실천해야 할 것이야….”
“예 스님 명심하겠습니다. 하온데 스님….”
“왜?”
“스님께서는 국모(國母)한테도 ‘너너’ 하십니까?”
“무엇이라구? 국모라고 그랬나?”
“옛날 같으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스님.”
육여사는 여전히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청담스님이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내 국모대접을 제대로 해줄테니 어디 한번 받아 보겠는가?”
“아, 아이구 아닙니다요 스님. 스님께서 스스럼없이 너너 해주시니, 꼭 친정 아버님을 보는 것 같아서 제가 어리광 한번 부려 봤습니다.”
“허허허…어리광이라…허허허….”
청담스님은 그날,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 대통령의 부인을 앞에 두고 호호탕탕 크게 웃으셨다. 스님의 안중에는 대통령도 대통령의 권력도, 대통령 부인도 존재하지 않았다. 스님 앞에는 오직 교화(敎化)해야할 한 중생이 있을 뿐이었다.

스님 걸망 속엔 꽃삽이 있었으니…

지금은 우이동 종점에서 도선사까지 도로가 잘 닦여져 자동차로 편하게 도선사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3Km에 이르는 비탈진 산길 뿐이라 청담 스님도 별 수 없이 걸어서 오르내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것도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런대로 힘들게 산길을 오르내릴 수 있었지만, 겨울철에는 위험한 빙판길이 한두곳이 아니었다. 요즘에야 톱니같은 신발 밑창이 있어서 안전하게 빙판길도 오르내리고 미끄럼을 방지해주는 갖가지 방한화도 개발되어서 편해졌지만, 청담스님께서 도선사에 주석하고 계시던 1960년대에 스님이 신을 수 있던 신발은 고작해서 검정고무신 뿐이었다.

겨울철 온 산야에 폭설이 내려 쌓이고 나중에는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다 얼어붙어 빙판으로 변해버리면 스님들은 그 검정고무신을 새끼줄로 동여메고 험한 산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했다. 청담스님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청담 스님은 그 미끄럽고 험한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오르내리시다 말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걸망을 벗으셨다. 그리고는 걸망 속에서 꽃삽을 꺼내들고 비탈길에 달라붙어 있는 얼음조각을 떼어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겨울철, 청담 스님의 걸망 속에는 언제나 꽃삽이 들어 있었는데 산길을 내려오다가 혹은 산길을 올라가시다가 비탈길에 눈이 얼어붙어 있거나, 얼음이 얼어 붙어 있으면 반드시 그 꽃삽으로 미끄러운 눈과 얼음을 떼어내시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미 지나왔지만, 뒤에 올 사람을 위해 비탈길의 얼음을 꼭꼭 떼어내던 스님, 바로 그 분이 청담스님이셨다. 청담스님이 강조하시던 보살행은 멀리 있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사소한 생활속에서 직접 실천할 수 있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속에 있었다.

“극락과 지옥은 마음속에 있다”

평생토록 ‘마음’ 법문을 펼치시며 불교정화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청담스님은 6·25직전 봉암사에서 수행하시다 빨치산의 습격을 받아 원주가 총살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 ‘마음’ 법문을 펼쳐 원주의 목숨을 구했다.

“천당입네, 극락입네, 지옥입네, 그런게 있다고 헛소리를 하느냐?”
빨치산 대장은 그렇게 스님들을 윽박지르며 위협했다. 그 때 청담스님이 한말씀 하셨다.
“이 사람을 살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 마음이 천당이요 극락인 것이오. 그리고 이 사람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마음이 바로 지옥인게요.”
청담스님의 이 한마디 명설법이 빨치산 대장의 마음을 움직여 총살직전에 놓여 있던 원주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천당과 지옥은 멀리 있는게 아니다. 바로 우리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윤청광〈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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