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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쿠시나가르 Ⅱ

기자명 법보신문

“춘다의 공양은 나를 니르바나로 인도했다”

<사진설명>쿠시나가르 열반당 앞 정원에 서있는 사라수. 붓다 열반 당시의 ‘사리쌍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춘다의 동산은 생각보다 크다. 보존 상태도 인도의 유적치고는 그런대로 수준급이다. 하긴 뒷동산 같은 곳이니 보존이고 말고 할 것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이곳은 동네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되고 있는데, 곳곳에서 왁자지껄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낯선 이국인들의 출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뜀박질 속도는 두 배쯤 그 강도가 세졌다. 말 그대로 동산(童山)이 된 것이다.

그런데 붓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인으로 알려진, 그래서 아마도 붓다의 유적지에서도 푸대접을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춘다에 대한 고정관념이 활기 가득한 동산을 돌아보면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하기야 붓다의 입적은 이미 3개월 전에 붓다가 바이샬리의 다자탑 터에서 아난다에게 일러준 바 있으니 춘다의 공양이 원인이 될 수는 없을 터이다. 두루 알다시피 붓다는 이미 장(腸)이 좋지 않아 소화 장애와 설사로 적잖이 고생을 하고 있었고, 등창마저 심해져 고통을 받고 있었지 않았던가. 물론 멧돼지 고기가 소화력이 쇠잔해진 붓다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것으로 붓다가 더 빨리 입적에 들었다고 단정짓기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돼지고기는 당시 인도인들에게 귀한 음식이었고, 좋은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 올린 춘다는 되레 칭찬을 받아 마땅할지도 모른다. 또한 춘다가 상한 돼지고기를 올렸을 것이라는 추정도 근거가 미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붓다에게 공양을 올릴 기회를 얻은 것을 크게 기뻐했던 신심 깊은 춘다가 상한 고기를 사용했을리 만무하고, 또한 인도는 더운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음식이 잘 썩지 않는 기후인 관계로 요리를 하는 도중에 부패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춘다가 올린 음식이 멧돼지 고기가 아니라 독버섯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음식의 본래 이름이었던 ‘스카라 맛다바’는 ‘연한 야생 돼지고기’라는 뜻이므로 돼지고기 요리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도 독버섯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것은 아마도 고기 먹는 것을 금하는 불교의 교주 붓다가 멧돼지 고기를 공양받았다는 것을 입에 올리기 어려운 북방불교권에서 이를 애써 감추려고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 인도에서는 음지에서 자란다는 이유로 버섯을 거의 먹지 않았으며, 일반인들이 피하는 음식을 춘다가 붓다에게 올렸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붓다가 춘다 집에서 공양을 마친 후 망고동산으로 돌아와 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것만은 분명하다. “붉은 피가 쏟아지고 죽음에 가까운 심한 통증을 느꼈다”는 기록이 불전에 전해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당시 붓다는 자주 복통에 시달렸으며, 스스로를 낡은 수레에 비교했던 것처럼 극도로 쇠잔한 상태에 있었으니 춘다의 공양을 입적을 부른 원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몸이 극도로 좋지 않으면서도 붓다는 여정을 계속할 것을 지시했다. 발걸음은 말할 나위 없이 느렸다. 사바세계에서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붓다는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아난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깊은 생각에 잠긴 스승의 표정을 보고는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난다, 피곤하니 잠시 쉬고 싶구나. 나무 아래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잠시 후 붓다가 말문을 열었다. 아난다는 부리나케 옷가지를 접어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붓다를 부축해 앉혔다. “아난다, 목이 마르구나. 먹을 물을 좀 떠오렴.” 붓다가 눈앞에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붓다가 마실 물을 길어오기 위해 아난다는 강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강물은 온통 흙탕물이다. “필시 수많은 수레가 강 위쪽으로 건너간 것 같다. 붓다에게 이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으니 상류로 올라가 맑은 물을 찾아야겠다.” 아난다가 맑은 물을 찾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난다가 돌아오지 않자 붓다는 통증과 갈증을 이기기 위해 깊은 선정에 들었다. 붓다가 정에 들어있는 동안 천둥번개와 함께 억수같은 소나기가 내렸다. 다른 제자들도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 제각각 나무 밑으로 피했다. 한참 뒤, 빗줄기가 잦아들었는데도 붓다는 여전히 깊은 선정에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말라족 출신이며 아라라 칼라마 선인의 제자로 쿠시나가르에서 파바 마을로 향하던 푸쿠사가 천둥번개와 소낙비 속에서도 선정에 들어 있는 붓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선정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려 붓다 앞으로 나아갔다.

<사진설명>쿠시나가르의 열반당. 내부에 붓다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아라라 칼라마 스승께서 붓다를 칭송하고 추앙했던 이유를 알겠습니다. 붓다께서 지금까지 암흑 속에서 등불을 밝히듯 방황하는 이들을 인도해주신 것을 비로소 알겠습니다. 저의 귀의를 받아주십시오. 다만 저는 처자식과 부모님을 부양하는 관계로 출가를 할 수는 없고 재가신자가 되고자 하옵니다.”

붓다는 미소로서 그의 귀의를 허락했다. 붓다의 마지막 재가제자 푸쿠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푸쿠사는 귀의가 허락됐다는 아난다의 언질을 전해듣고는 기쁨에 넘쳐 황금색 비단가사를 두 벌 공양했다. 붓다는 푸쿠사의 양해를 얻어 한 벌은 자신이, 나머지 한 벌을 아난다에게 주었다. 붓다가 비단옷을 걸치자 그만 비단옷의 화려한 광채가 사라져 버렸다. 아난다가 놀라 연유를 물으니 붓다가 답했다.

“아난다야, 수도를 완성한 붓다의 피부색은 두 가지 경우에 깨끗해지고 빛을 발하느니라. 첫 번째는 붓다가 무상의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 또 하나는 번뇌가 없는 영원한 열반, 즉 니르바나에 들어갈 때이다. 이 두 경우에 붓다의 몸은 빛을 발하여 황금색이 된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비단옷이 빛을 잃은 것은 내 몸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아난다, 나는 오늘밤 영원한 니르바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쿠시나가르의 우파바타나에 있는 말라족의 사라나무 숲에서.”

아난다는 망연자실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두 뺨에 뜨거운 눈물이 연신 흘러내릴 뿐. 붓다께서 세상을 떠나신다면 나와 제자들은 누구를 믿고 의지한단 말인가.

다시 길을 재촉한 붓다는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아난다에게 춘다에 대한 당부를 내렸다. “아난다, 내가 네게 말해둘 것이 있다. 내가 입적하면 사람들은 아마도 춘다에 대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이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제자와 춘다에게 이렇게 전하라. ‘나는 붓다로부터 이렇게 들었다. 붓다의 생애에는 두 번의 중요한 공양이 있었다. 그 하나는 수자타 여인으로부터 받은 유미죽 공양, 나머지 하나는 춘다에게 받은 공양이다. 유미죽 공양으로 나는 깨달음을 이룰 힘을 얻었고, 춘다의 공양에 힘입어 번뇌의 잔재가 없는 완전한 니르바나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른 어떤 공양보다도 이 두번의 공양이 가장 큰 과보와 공덕을 갖는다.”

자신의 입멸 후 춘다에게 쏟아질 비난과 박해를 염려한 붓다의 위없는 자비의 말씀이었다. 붓다는 또 이 자리에서 제자들을 향해 “질문할 것이 있으면 지금 하라”고 당부했다. 이에 아난다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 붓다의 제자들과 붓다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아난다, 성취에 관한 한 나와 제자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
이 때 한 비구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어떻게 여인을 대해야 하겠습니까?”
“보지 마라!.”
“만일 눈에 띄면 어떻게 합니까?”
“말하지 말라!”
“말을 걸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깨어 있어라!”

붓다가 파바 마을에서 쿠시나가르까지 불과 20여 킬로미터의 거리이다. 이 길을 걸어가는데 무려 25차례나 휴식을 취했다는 기록은 마지막 여정의 힘겨웠던 정도를 짐작케 한다. 이것은 어쩌면 사바와 붓다의 인연이 다했음을 나타내주는 자연스런 표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얼마 후 붓다와 제자 일행은 쿠시나가르에 도착, 사라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붓다의 몸은 몹시 지치고 쇠약해져 있었다. 붓다는 마지막 순간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붓다는 준비된 자리에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아난다 역시 직감으로 붓다의 열반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아난다는 나무에 기댄 채 붓다의 시선을 피해 눈물을 흘렸다.

붓다가 열반에 들 것이라는 소문이 작은 고을 쿠시나가르에 삽시간에 퍼졌다. 위대한 스승에게 마지막 예를 올리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 가운데 수밧다라고 하는 방랑수행자가 끼어있었다. 그는 아난다에게 다가가 붓다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아난다가 거절했지만, 수밧다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붓다가 아난다에게 수행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스승이시여, 피곤하신 스승께 질문하고자 고집을 피운 저를 용서하십시오.”“계속하라, 수밧다, 무엇이든 물으라.”
“스승이시여, 세상에는 나름대로 수행공동체와 제자들을 거느린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진정한 지식과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그들이 지혜와 통찰력을 가졌다고 보십니까?”
“수밧다, 내 말을 잘 들으라. 그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그들이 따르는 교의와 계율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교의와 계율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는 다름아닌 제자들의 행동인 것이다.”

붓다의 명쾌한 답변에 수밧다는 기뻤다. 수밧다는 붓다에게 자신을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했고, 붓다는 흔쾌히 수락했다. 붓다에 의해 승단에 받아들여진 마지막 비구는 이렇게 탄생했다.

<사진설명>한 스님이 열반당 인근의 스투파 옆에서 선정에 들어있다.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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