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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죽어가는 사람의 첫 번째 반응, 두려움

기자명 법보신문

몸의 병보다 심리적 불안이 더 큰 고통

임종환자가 보여주는 또 다른 첫 번째 반응은 두려움이다. 60대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친구인 의사가 잔여수명이 3개월 정도라고 말해 주었다. 잠시 후 환자의 상태가 이상해지더니 온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더니 “죽으면 꼼짝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지옥의 공포가 몰려와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지옥에 대한 공포로 인해 영적인 위기를 겪은 것이다. 의사는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했는데도 별 효과가 없자 마지막으로 호스피스에게 의뢰하였다.

병실을 찾아가 보니 환자는 침대에 똑바로 누워 무릎을 약간 세운 채 이빨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 무서운 것이라도 보고 있는 듯 공포에 질린 얼굴 표정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호스피스 관계자가 “무엇이 그렇게 무서우세요?” 라고 물었다. 그는 덜덜 덜면서 들릴 듯 말 듯 “지-옥-에-갈-까-봐-서-” 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그의 마음을 안심시켜주자, 다음 순간 그는 갑자기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호스피스 봉사자의 손을 꽈악 쥐길래 다시 한 번 쳐다보니 굳어있던 온 몸이 다 풀려있었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유방암에 걸린 어느 여성(42살)의 죽음 역시 애처러운 죽음이었다. “불안하면 호흡곤란이 더 심해져요. 두 달 전부터 갑자기 심해졌어요. 살고 싶어요! 정말 살고 싶어요!” 그녀는 자신이 죽을까봐 두렵고 고통이 있을까봐 무섭다고 자주 말했다. 암으로 인해 쇠약해지는 신체적 원인보다는 당사자의 심리적 불안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상황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주 심해요.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요.” 입원한지 열흘째 되던 날 호스피스 봉사자에게 꼭 할 말이 있다면서 무언가 말하려고 했는데, 꼭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못한 채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현대 물리학에 불확정성원리가 있다. 불확정성 원리는 관찰대상과 관찰자의 관계 아래 관찰내용이 형성된다는 과학법칙으로, 관찰자에 따라 관찰내용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불확정성원리는 미시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원리는 아니고 거시세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통용되는 법칙이다. 불확정성 원리를 죽음이란 현상에 적용해보면 죽음은 두려운 현상으로 불확정, 확정되어 있지 않다. 불확정성 원리에 입각해 보더라도, 죽음이해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맥락에서 임종환자가 다양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굳이 불확정성 원리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죽음을 서로 다르게 이해해 각양각색으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본다면, 죽음이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마음이 두려운 현상으로 사전에 미리 확고하게 정해져있다고 한다면, 누구든지 두려운 모습으로 죽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일 뿐이지, 모든 사람이 두렵게 죽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밝은 미소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운 현상으로 확정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그렇게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다가 죽은 영혼이 그런 죽은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후회할까.

인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동물’ ‘미완성 교향곡’이다. 삶의 방식이 이미 확정된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인간의 경우 이미 확정된 부분도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음식섭취의 방법에 있어서 우리는 채식, 육식, 그리고 잡식, 어떤 방식이든 가능하다. 또 죽음의 방식에 있어서도 절망 혹은 희망, 어느 쪽이든 가능하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죽음의 방식, 어떤 식으로 정할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자. 우리의 삶은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은 부분을 자기 자신이 채워넣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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