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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찬 수메도 〈상〉

기자명 법보신문

태국 ‘숲속 수행 전통’ 서양에 확립

8년 전에 태국 동북부의 우본 라차타니를 방문해 1975년 아찬 차 스님이 아찬 수메도를 위시로 한 서양의 제자들을 위해 설립한 왓 파 나나차에서 필자는 하루 밤을 머문 적이 있었다. 넓은 숲 속에 전기도 없는 쿠티(스님들이 거처하는 작은 오두막)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 예불과 아침 공양에 참석하는 등, 숲 속 수행의 전통을 따르는 왓 파 나나차의 스님들의 생활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태국의 사원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과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수행의 전통을 잠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이곳 왓 파 나나차는 이번에 소개하는 아찬 수메도 스님을 초대 주지로 하여 서양인들이 영어로 태국불교 전통을 배울 수 있도록 설립된 곳이다.

태국에서 10년간 수행

올해로 세수 70세가 되는 아찬 수메도 스님의 본명은 로버트 잭맨(Robert Jackman)이다. 1934년에 미국 워싱턴주의 시애틀 태생으로 1951년에서 53년까지 워싱턴 대학에서 중국어와 역사를 공부하다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해군 의무병으로 일본에서 4년 동안 군 복무를 하였다. 이 때, 스즈키 다이세츠의 선불교를 알게 되었다. 불교를 만나기 전에 한 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로버트 잭맨은 기독교의 믿음과 무조건적인 수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으며, 기독교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하지만 불교는 단순히 신앙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의심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 주었고,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진리를 찾아가는 실제적인 가르침이었기 때문에 불교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Ajahn Sumedho Interviewed’ 1981, Interview by Roger Wheeler)

군복무를 마친 후, 1959년 워싱턴 대학에 복학하여 극동아시아에 대한 연구로 학사과정을 졸업한 후,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분교에서 1961년부터 63년까지 남아시아 연구로 석사과정을 졸업한다. 그 후, 1964년에서 66년까지 보르네오섬에서 평화봉사단으로 영어를 가르쳤으며, 1966년에 태국의 방콕으로 가서 1년간 재가자로서 불교를 배우면서 영어를 가르쳤다.

1967년 5월에 출가하여 농 카이에서 비구계를 받았으며,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찬 차 스님의 태국인 제자를 만나, 왓 농 파 퐁에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아찬 차 스님을 소개받는다. 그 후 1977년까지 10년간 아찬 차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서양인 최초의 제자가 된다. 1975년, 아찬 차 스님은 늘어나는 서양인 제자들을 위해서 왓 농 파 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에서 잠시 언급한 왓 파 나나차를 설립하고 아찬 수메도 스님을 초대 주지로 임명하였다. 이듬해인 1976년 미국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잠시 영국에 들리게 되었고, 런던 근교의 햄프스테드(Hampstead)에 있는 작은 절에 머물렀다. 1977년, 1956년에 영국불교 발전을 위해 설립된 영국 승가 후원 재단(The English Sangha Trust)의 초청으로 스승인 아찬 차 스님을 모시고 두 번 째 영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스승의 권유에 의해서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본격적으로 영국에서 수행과 포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1979년, 영국 남부의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에 위치한 유서 깊은 햄머우드(Hammerwood)의 숲 (한 독지가에 의해 기증된 108에이커, 약 13만2천평의 숲)에 찌따위웨까(Cittaviveka) 사원을 건립하여 최초의 원장이 되었다. 이 사원은 태국의 숲 속 수행의 전통이 서양에 뿌리내리는 발판이 되었다.

1983년, 늘어나는 승가 인원 때문에찌따위웨까 사원이 한계에 이르자, 영국 승가 후원 재단은 런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헤멜 햄프스테드(Hemel Hempstead)의 옛 학교부지를 구입해서 1984년 8월에 두 번째 사원인 아마라와띠(Amaravati)를 설립하고 아찬 수메도 스님을 초대 원장으로 모신다. 이 두 사원은 영국 승가 후원 재단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청정한 상좌불교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후, 영국을 위시로 해서 서양에 전해진 태국 숲 속 승가 전통(http://www. forestsan gha.org/)은 영국의 몇 곳과 이태리, 스위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 분원을 두게 되었으며, 아찬 수메도 스님은 이러한 분원의 지도자로서 서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남방의 전통적인 불교 승가를 이끌어온 선구자가 되었다.

76년부터 영국에서 수행지도

사실 아찬 수메도 스님은 출가해서 특별한 스승을 찾을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1967년에 아찬 수메도 스님이 처음 아찬 차 스님을 만났을 때, 현명한 분이라는 확신은 있었고, 좋아하게 되었지만, 특별히 헌신적으로 따라야겠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적지 않았던 왓 농 파 퐁에서 아찬 차 스님과 함께 10년 가까이 지냈다. 아찬 차 스님의 지도 방식은 승가의 계율을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가운데 수행하는 것이었다. 아찬 차 스님은 수행처인 사원을 건립하고 사람들이 출가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즉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었다. 특별하게 강조하는 수행법도 없었다. 단지 각자가 경험하는 생활에서 항상 깨어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조건들의 무상함을 관찰할 것을 강조하였다.

아찬 수메도 스님은 아찬 차 스님을 만나기 전에 방콕에서 스스로 수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수행법을 이해하게 되었고, 아찬 차 스님을 만난 후에도 그 방법대로 수행하라고 권유받았다고 한다.

마음관찰-지계 강조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에는 엄격했지만 수행법에 대해서는 그 동안 익혀온 방식대로 계속하라고 북돋아 주었다. 이러한 수행 가풍은 아찬 수메도 스님이 1981년에 미국의 메사츄세츠의 ‘Insight Meditation Society’에서 처음으로 8박 9일 동안 집중수행을 지도할 때 그대로 나타난다. 아침 예불 시간의 간단한 염불과 하루 2시간의 법문, 그리고 법에 대한 질문을 하는 시간 외에는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도록 지도하였고, 25명의 초보 수행자들은 아찬 수메도 스님의 이러한 자연스런 수행 가풍에 점차 적응해 갔다.
김재성〈경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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