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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플럼빌리지(Village der Prunier)

기자명 법보신문

寂拈이
숨쉬는 여긴,
마음의 고향

<사진설명>플럼빌리지에서 수행이란 따로 없다. 도반과 길을 걷는(사진 왼쪽)중에도 대중과 호숫가를 산책하는 중에도 ‘걷기 수행’을 한다.

2002년 8월 센포라그란데 기차역에서 스님들이 운전하는 밴을 타고 플럼빌리지가 있는 테낙까지 가는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좌우에는 끝도 없이 넓은 해바라기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아이 몸집만큼이나 만개한 노오란 해바라기꽃이 남프랑스의 말간 햇살을 받으면서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를 아직은 여물지않은 파란빛 열매를 단 포도밭이 메우고 있었다. 석일행(釋一行)을 베트남어로 발음한 이름이 틱낫한, ‘석(釋)’은 석가모니 부처님 집안 사람이라는 뜻이고 ‘일행(一行)’은 ‘한 가지 행, 한결같은 행’이란 뜻의 법명을 가진 틱낫한 스님이 이곳의 수련회는 수련회(retreat)가 아니라 대접(treat)이라고 말한 뜻이 무엇인지 이제 몸소 체험하게 될 터였다. 100여명의 스님들이 자신들을 위한 수행과 결제도 열심히 하지만 재가수행자를 위한 수련회와 교육도 적극적으로 챙겨주고 있는 곳, 비구와 비구니의 위상이 동일하고 수계일로만 선후배가 가려지는 민주화의 현장을 가보는 것이다.

설립 20주년을 맞은 플럼빌리지는 20년 세월이란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성년이 되는 나이라며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센터 곳곳에 틱낫한 스님의 멋진 영어 붓글씨로 ‘내가 스무살이 된 날’이라는 표어가 붙어있었다. 1982년 프랑스 북쪽의 스위트포테토 농장에서 이주하여 설립한 이곳에서 1983년 역사적인 제1회 여름수련회가 열렸었다. 당시 참석자는 117명, 대부분 베트남인들이었으며 서양인들이 드문드문 끼어있었다. 참석인원은 9회 1030명, 그리고 20회 1800명으로 늘어났고, 그 구성도 서양인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수련 프로그램을 보면 1회에는 좌선과 걷기 명상, 차 명상, 스님과의 상담으로 간단했지만, 2002년 에는 노래 명상, 챈트, 지구와 접하기, 다시 시작하기, 평화 조약 체결하기, 연극 공연,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등이 추가되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982년 9월 아랫마을(Lower Hamlet) 하나로 시작한 플럼빌리지는 현재 윗마을(Upper Hamlet), 새마을(New Hamlet), 중간마을(Middle Hamlet) 등의 승가 건물 외에도 여름 수련회에는 몇 개의 임시 건물을 오픈해서 수련자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도착한 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윗마을로 가서 틱낫한 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 스님이 하신 첫 말씀은 “여러분은 이미 도착했습니다. 고향에 오신 것입니다.”였다. 천만리를 달려와 낯선 땅에서 세계 80여개국에서 온 사람들 속에 섞여 들은 스님의 그 말씀은 서서히 파문을 일으키며 우리 가슴에 파고 들었다. 그것을 이제 주어를 바꾸어 “I have arrived. I am home.”으로 가슴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심오한 법문이 바로 여섯 단어로 된 이것이라고 말씀했다. 우리가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찾아헤매던 마음의 고향이 이미 우리 안에 있음을, 우리는 이미 도착했음을 말해주는 그것임이다.

플럼빌리지에는 ‘빨리 빨리’도 없고 ‘많이 많이’도 없다. 그저 팔정도의 하나인 정념(正念),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깨어있는 눈으로 보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아는 수행을 24시간 실천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밥먹을 때 밥먹는다는 것을 알고, 잠잘 때 잠잔다는 것을 안다’ 는 것이다. 플럼빌리지에는 사람들이 깨어있음을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몇 가지 시스템이 있다. 이곳을 방문한 한 유럽여성의 말을 들어보자.

“사무실에 들러 입실 수속을 하던 나는 깜짝놀랐다. 내게 이것저것을 묻고 서류를 작성하던 여직원이 전화벨이 울리자 갑자기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물레의 바늘에 찔린 순간처럼 그녀는 펜을 잡은 손을 반쯤 허공에 둔 그대로 모든 동작을 멈추고 얼어붙었던 것이다. 전화벨이 세 번째 울리자 그녀는 ‘다시 살아나’ 수화기를 집어들고 차분한 말로 전화를 받았다.”

<사진설명>틱닛한 스님은 이곳의 수련회를 일러 ‘수련회(retreat)’라 하지 않고 ‘대접(treat)’이라 말한다.

이곳의 수련회에 가면 수련회와 불교에 관한 수많은 고정관념이 깨진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유익한 경험이 될 수도 있으리라. 여기 내가 플럼빌리지 수련회를 체험한 후 깨야만 했던 여덟가지 고정관념을 수록하니 독자들도 한번 직접 가서 확인해보기 바란다.

글=진우기(불교전문번역가)


8가지 고정관념 깨기

수련회에 가면 좌선을 많이 시킨다?
실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 좌선은 조금밖에 하지 못한다.

수련회는 힘들고 고생스럽다?
때로 잠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법문은 엄숙하게 듣는다?
플럼빌리지 법문은 걸으면서도 듣고 풀밭에 누워서도 엎드려서도 듣는다. 장소가 좁아서(실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반은 밖의 풀밭에서 법문을 듣기 때문이다.

명상은 앉아서만 한다?
웬 명상이 그리 많은지 플럼빌리지에서는 모든 것이 다 명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먹는 명상, 걷는 명상, 종 명상, 전화 명상, 차 명상, 아이스크림 명상, 일 명상, 설거지 명상, 포옹 명상, 운전 명상, 채소가꾸기 명상, 청소 명상 등등, 하루종일 명상을 한다.

스님은 노래하지 않는다?
플럼빌리지에 도착한 날 밤 수련자는 편안히 자리에 누워 스님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온전히 쉬는 수련을 한다. 이름하여 Total Relaxation 수련인데 틱낫한 스님의 그림자이며 오른팔격인 찬공스님이 가장 잘 한다.
그리고 특히 더 놀라운 것은 플럼빌리지에서 서열 5위 안에 드는 찬공 노스님이 어린 제자들 사이에 끼어 노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찬공스님의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무데나 자연스럽게 끼어서 노래한다.

불상은 높은 곳에 잘 모셔야 한다?
플럼빌리지의 불상은 크지 않고 불단이나 닫집 등의 격식도 없다. 정원에도 나무 아래 소박한 불상이 몇 기 있다. 마치 붓다 시절 숲속 보리수 아래 앉아서 명상하는 붓다를 보는 듯하다.

밥먹을 땐 화기애애한 대화를 해야 한다?
평소의 식사예법과는 다르다. 그리고 우리나라 수련회의 발우공양에 비교하면 같은 패밀리(새마을에는 5개의 수련자 그룹 패밀리가 있었다)끼리 나무 밑 식탁에 둘러앉아 묵언 속에 밥을 먹는 것은 좀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붓다와 예수는 서로 다른 예배당에 있다?
플럼빌리지에는 어느 마을을 가나 붓다와 예수의 초상이 나란히 벽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교는 불교아닌 모든 것으로 이루어졌고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아닌 모든 것으로 이루어졌으니 두 분이 같이 계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자란 서양 스님들과 서양 수행자들은 그런 분위기가 내집처럼 편안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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