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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같은 다종교국가의 전법

기자명 법보신문

“전법은 세력지배가 아닌
본성회복의 다양한 호소”

지하철에서 기독교 여자 전도사가 나의 좌석 앞에 와서 10여분간 목쉰 소리로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요지는 예수 믿으면 천국행, 믿지 않으면 지옥행이라는 것이다. 나는 저런 짓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다 무시하든가 비웃는 것 같았다.

기독교 신자인 어떤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행정관할 구역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공언했다고 하고, 남아시아의 해일참사에 대하여 다른 종교들을 독설로 매도하면서 어떤 목사가 설교했다고 한다. 한국과 같은 다종교국가에서 저런 배타적 독선적 전도행위들은 보통 심각하고 위험스런 일이 아니다.

모든 종교의 전법(도) 목적은 많은 사람들을 진리에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무엇이 진리인가? 『성경』의 「요한복음」(18:36-37)에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았다. 예수님은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시고, 만약 내 나라가 이 세상의 것이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명하였고, 이어서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는다고 말 하심에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되물었다.

이에 예수님이 묵묵부답이었다. 아무튼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그 진리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의지가 아님이 확실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종들이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넘기지 않고 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하여 싸웠으리라.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진리는 니이체가 잘 보았듯이 진리의지를 빙자한 권력의지가 아님이 확실한 것 같다. 그동안 서양의 기독교는 진리의지를 내세우면서 이 세상을 온통 지배하려는 권력의지를 도처에 발산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 니이체가 이것을 예수님의 복음과 별상관이 없는 교회의 제도적 권력의지라고 신랄하게 풍자하였다. 그러면 진리의지와 권력의지와 상관이 없는 진리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예수님의 묵언이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또 「요한복음」(16:7)에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예수님이 언명하셨다. 저 묵언과 이 세상으로부터 떠남의 은적은 이 세상을 하나의 정해진 길로서 재단하지 않겠다는 열린 마음의 계시와 같지 않는가? 만약 예수님이 어떤 것이 진리라고 규정하였다면, 사람들은 그 규정의 노예가 된 교조주의의 화석 상태를 면치 못했을 것이겠다.

나는 14세기 독일의 가톨릭 수도사였던 에카르트를 생각한다. 아담이 본능의 인간이라면, 예수님은 본성의 인간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이 세상의 지배는 본능적 소유의식의 발로와 같다. 인간의 소유적 본능은 그 능력이 희미해서 지능이 그 본능을 대신해준다. 아담은 지능의 인간을 상징한다. 칸트가 아담을 그렇게 해석했다. 에카르트는 이기배타적(利己排他的)인 이기심이 전혀 없는 자리이타적(自利利他的)인 본성의 인간상징으로 예수님을 해석했다. 이기심은 자기의 권력의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진리의지를 앞세운다.

그렇다. 본성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라고 에카르트가 보았다. 그런데 그 본성은 규정되지 않는다. 본성은 허공처럼 무한히 열린 의미고 거기에 이르는 길도 다양하다. 한국처럼 다종교국가에서 전법(전도)은 결국 인간에게 잊혀진 본성을 다시 찾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길일 수밖에 없다.

본성을 다시 찾는 길은 불교의 길, 기독교의 길, 천주교의 길, 다른 종교의 길 등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그 본성을 다시 찾는 길에 어느 종교가 독점-배타적일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만 되찾으면, 그 안에 부처님과 예수님과 불교의 성자들과 타종교의 성자들이 다 함께 공존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전법(도)은 세력지배가 아니라 본성의 회복을 호소하는 것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철학과 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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